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85>11장 청년장교
이항복이 자세를 고쳐앉더니 다시 힘주어 당부했다.
“지금 보다시피 조선국은 전쟁중인데도 조정은 주린 이리떼처럼 서로 물고 뜯고, 찧고 빻고 하는 형세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자기들 이익을 탐하는 쟁투를 벌이다 보니 나라가 개꼴이 되었다. 환멸을 느낄 때가 많아서 나는 뒤로 물러앉아 있다만, 너는 세상을 넓게 멀리 보아라. 곧 방해어왜총병관 이여송 장군이 올 것이다. 그를 내가 맞을 것이다.”
이여송은 1592년 섣달 조선에 왔다. 왜란 무렵 명나라 병부상서 석성-요동총병 양소훈-방해어왜총병관(防海禦倭總兵官) 이여송으로 군 계보가 짜여졌는데, 그는 왜군 격퇴의 총사령관 격이었다. 양소훈과 이여송은 쌍벽이었으나 조선에 들어와서는 역할을 완전히 분리했다.
어느날이었다. 통군정 아래 칼바람이 몰아치는 벌판에서 말을 타고 기마훈련 중이던 정충신은 동충평과 함께 잠시 언덕에 누워 휴식을 취었다.
“야, 너 중국말 배우겠다더니 빨리 익히는 법 가르쳐줄까?”
동충평이 뚱땅지같이 제의했다.
“그래, 빨리 배우고 싶다. 어떤 길이 있나?”
“그러면 욕부터 배워라.
“그건 안되지. 점잖들 못혀. 중국말로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는 인사는 어떻게 하냐.”
“‘헨 까오싱 지안따오 닌’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상투적인 인사법으로는 중국말 빨리 배우기가 어렵다. 그렇게 나가면 넌 왕빠딴이 된다.”
“왕빠딴? 좋은 말이냐?”
“개자식이란 말이다.”
“이런 개자식! 왕빠딴은 나가 아니라 너여!”
“거 봐라. 벌써 넌 왕빠딴을 배웠다.”
“이런 못된 놈, 넌 나쁜 놈이야.”“그건 헤이런! 이다. 나쁜 놈, 조폭같은 놈...”
“이런 왕빠딴, 헤이런 같은 놈!”
“거 봐라. 당장 상놈의 새끼라는 말을 배웠지 않느냐, 하하하.”
“그럼 일본놈에게 ‘쪽바리 조폭 개새끼들아!’ 하고 욕을 퍼부으려면?”
“왕빠딴이나 헤이런을 그대로 쓰라. 중국 욕은 그렇게 많지 않다. 욕부터 배우는 것은 감정을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병훈련이니 말타는 법을 먼저 제대로 익혀야 한다. 넌 기마 자세가 엉망이다. 기초가 덜돼있어. 마상에 서면 지휘관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기마자세부터 폼생폼사로 배우라. 빠르게만 가려고 하는 감정부터 앞세우는데 그러면 말도 다치고 기수도 떨어지기 쉽다. 머리, 어깨, 엉덩이, 다리가 수직선상 일직선상에 놓이는 것이 바른 기마자세다. 세 살 때부터 말을 탈 줄 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교관으로부터 기마자세를 터득한 연후에 말달리는 기법을 배운다. 조교관은 전래 기술을 익힌 아버지도 될 수 있고, 삼촌도 될 수 있다. 기병의 역할이 무엇인 줄 아는가?”
“마상에서 적을 무찌르는 군사 아닌가.”
“아니지. 지휘관으로서 병사들을 지휘통솔하는 역할이다. 적에게 방진을 짜지 못하도록 미리 파고들어 적진을 교란시키는 전법을 구사하는 자다. 적의 진용이 흩어진 상태에서 보병이 파고들어 적병을 칼로 베는 것이다.”
동충평은 신이 나 있었다.
“잘 들어라. 사람뿐만 아니라 말 또한 훈련과정에서 단련된다. 말은 군마로 쓰기 위해서 3년 정도 집단훈련과 질주연습, 구보연습 및 사람과의 친화 등을 배운다. 군마병은 예비마까지 포함해 늘 이삼십 필씩 거느려야 제대로 된 병종을 얻는 병과자가 된다.”
“그냥 말만 타면 되는 줄 알았다.”
“천만의 말씀이다. 기병은 무조건 말을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기동력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건 반만 맞는 말이다. 기병도 여건에 따라서는 두 발로 걸어다닌다. 기병은 기본적으로는 보병과 함께 다니기 때문에 보병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걷는 경우가 많다. 말 위에 있을 때 보병들은 졸개로 보인다. 그렇게 위엄이 있고 기품이 있다. 그러나 말이 지치면 업고 다녀야 한다.”
“업고 다녀? 고건 디지는 일 아니여?”
“그만큼 말을 아끼라는 말이다. 전투용 말은 짐을 실어선 안된다. 일본 사무라이들이 일개 기수에게 손쉽게 패한 이유가 뭔가?”
“니가 대답해봐라.”
“말을 자기 생명보다 위했기 때문에 말이 그 보상을 하는 것이다. 기병은 두 가지 장점을 가지는데 하나는 충격력이고 다른 하나는 기동력이다. 충격력은 기병이 가진 질량과 속도에서 오는 것으로, 말과 기수의 무게를 합치면 오백근이 넘어가고 이런 덩치가 질풍노도처럼 달려들면 그 자체만으로도 위력적인 무기가 된다. 말 하나만으로도 이럴진대 수백기의 기병이 한꺼번에 돌격을 실시하면 그 앞에서 적은 대열을 유지하기 어렵고, 아무리 긴 창을 들었다 해도 아작나버리는 것이다. 너 낙상지 장군을 아는가?”
동충평이 엉뚱하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