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86>11장 청년장교

“난 모른다. 그가 누구냐.”

정충신이 고개를 저었다.

“간쑤성에서 잠깐 모시던 분이었다. 명마를 고르러 왔는데, 내가 도왔다.”

동충평이 설명하자 남방 병사가 끼어들었다.

“낙 참장은 남병사 사령관이시다. 우리가 그 휘하에 있었다.”

낙상지는 신기영(북경수비대) 좌참장으로 있다가 이여송 휘하의 참장이 되어 남병사 오천 병력을 이끌고 의주에 파견된 원군 지휘자였다. 남병사들이 고래로부터 내려오는 오나라 군대 전통대로 용맹성을 떨치고 있었으나 근래는 오합지졸 신세여서 낙상지가 사령관으로 가 질서를 잡았다.

“낙 참장은 젊은 시절, 남방의 닝뽀에 주둔하고 있을 때 왜노에게 포로로 잡혀 당한 적이 있어서 왜에 대한 원한이 깊다. 그래서 왜에 침략을 당한 조선에 동정심이 많고, 왜에 대한 복수를 조선 땅에서 하려고 한다. 근력과 용력이 뛰어나 천근을 든다고 해서 낙천근(駱千斤)이요, 말 또한 잘탄다고해서 마상 번개로도 불리는데 왜노에게 잡힌 것을 가장 수치로 아는 분이다.”

정충신은 명나라 군대에 그런 장수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명 장수는 게으르고, 싸우기를 싫어하면서도 반면에 여자에게 주접떠는 인간군상으로 보였던 것이다. 대표적인 장수가 평양성에서 패배해 도주한 명의 총병 조승훈이었다.

“그가 힘이 장사고, 말을 잘 탄다고?”

“그렇다니까. 그는 병사의 기초 훈련을 강조하는 분이시다. 그의 휘하의 병졸들은 어떤 싸움에 나가도 전투력을 잃지 않는다. 그런 장수가 여기 오신 것은 조선에 큰 행운이다.”

“명 장수들은 맬겁시 거드름피우고 대접받을라고 하는 위인들 아니여?”

“낙 참장은 그렇지 않다니까. 누구에게도 차별이 없는 인격자시다. 우리가 가까이 가서 말을 걸어도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분이다. 천인은 아니나 양반 계급도 아닌 신분으로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보고, 벼슬길이 막힌 관노, 사노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귀순자는 차별없이 대하는 위인이시다.”

누구나 차별없이 대한다는 말에 정충신은 그에게 뻑 갔다. 그도 성장기에 좀 차별을 받고 자랐다. 몰락한 가대는 더 빈충맞은 사람으로 비쳐졌는지, 사람들은 어린 그를 하대했었다.

“누구나 친절하당개 하는 말인디, 만나볼 수 있냐?”

“절차는 밟아야 할 것이다.

“하기야 막 만나는 군번은 아닐팅개. 니가 한번 다리 놔볼텨?”

“나는 안된다. 배신자를 받아들이겠냐.”

“그분은 도량이 넓으시담서? 너는 배신자가 아녀. 적 진영인 왜에게 투항했다면 그런 말 들을 수 있겠제마는, 조명연합군의 일원으로 조선군에 들어온 것 아니냐.”

“그래도 이건 아니다. 느닷없이 조선군의 까까머리 총각 병정이 찾아가면 만나주겠냐. 어린애가 놀러온 것으로 알겠지. 너 자신을 위해서도 격식이 필요하단 말이다.”

딴은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부대 조장쯤 되니 동충평은 나름 사려깊은 면이 있었다. 정충신은 동충평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마침 이항복 대감은 행랑채에 있었다.

“대감 마님, 훌륭한 명의 장군이 의주에 와있다고 하옵니다.”

“누구냐.”

무장들의 전선 배치도를 살피고 있던 이항복 대감이 들어와 아뢰는 정충신을 바라보았다. 정충신이 동충평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소상히 소개한 뒤 말했다.

“그러하오니 우리가 그를 접변(接辯)했으면 하옵니다.”

“그래서 담화를 나눠보자 그 말이냐? 내 답답하던 차에 좋은 생각이다.”

다음날 병판 소속의 영접관을 보내 낙상지 참장을 이항복의 사가로 초대했다. 동충평은 만일을 몰라 숨고, 영접관과 정충신이 안내해 낙상지를 행랑채로 안내했다. 방에는 주안상이 차려졌다.

“기방이 아니라서 죄송하외이다.”

인사차 이항복이 말하자 낙상지가 껄껄 웃었다.

“진중의 낙은 기녀가 아니라 우정입니다.”

“고매한 인격이시옵니다.”

이항복은 그의 말 한마디로 그가 예사 장수가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알았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낙상지가 말했다.

“내가 평양성을 진격하기 위해 지방을 돌았습니다. 전쟁은 민심이 칠할을 좌우하니까요.”

“돌아봤더니요?”

“삼남지방까지 갔다 왔댔지요. 헌데 쓸만한 군사가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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