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87>11장 청년장교
 

“그것이 무슨 뜻이랍니까?”

하고 반문했으나 이항복은 내심 창피스러웠다. 명색이 병조판서인데 명의 사단장급 장수한데 조선군사가 형편없다는 평을 듣다니,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같은 수치심을 느꼈다.

“내 말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내 본 느낌대로 말하는 것이올시다.”

이항복은 그가 손님으로 초대받은 이상 예를 갖추리라 마음 먹었다.다. 그를 통해 조선군의 실상을 알아볼 수 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아군은 아군이라는 가족 개념으로 감싸안으려고만 했지, 제대로 돌아보지 않으려는 측면이 있었다.

“기탄없이 말씀해주셔야 내가 병무 행정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지요. 보신대로 말씀해보시지요.”

“알겠습니다. 첫째는 스스로 힘을 기를 수가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장수에서 졸개에 이르기까지 사대근성이 체화되어 있습니다. 자주군대의 자세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다음으로, 군사는 양인(良人)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귀족 자제에서부터 관노, 사노, 갓바치, 부상(負商) 등 천인들까지 망라되어 구성되어야 강군이 되는 것입니다. 통합의 기제가 작동되어야 하니까요. 그런 가운데서 상호 주인의식과 애국관을 기르게 되지요.”

“옳은 말씀입니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그런데 모두에게 골고루 빠짐없이 군역을 치르게 되어있는데 귀족 자제, 양인들은 복무 대신 뒷 배경을 동원해 빠지거나, 포(布)를 내고 입대하지 않고, 대신 머슴이나 천인들이 군역을 치르게 된다면 군 사기가 어떻겠습니까. 부대마다 병적(兵籍)만 있고 군영에 없는 병사가 많으니 전쟁을 제대로 치르겠습니까. 조령(鳥嶺) 이남에서는 벌써 왜의 추종자들이 무리로 생기고, 여자들은 왜놈 씨를 지닌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게 왜놈 세상이지 어찌 조선 세상이라고 하겠습니까. 이러면 전쟁은 하나마마입니다. 참패는 불문가지지이고, 명실공히 왜의 식민지가 되는 것입니다.”

낙상지의 눈은 날카롭고 분명했다. 대저 알고는 있었지만 묵살했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항복 역시 가진 자의 시선으로 사물을 보았던 것이다.

“참으로 고통스런 지적이십니다. 뼈저리게 통감하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의병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횡적 연대가 없으니 포말화되고 맙니다. 약한 군은 연합작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다음으로, 전쟁의 수장들이 한결같이 지방 수령들이 차지하고 있는 바, 그들이 과연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있습니까? 방안에서 사서삼경 외던 사람이 휘청거리는 다리로 산악지대를 누빌 수 있습니까. 부장 쯤은 직업군인으로 채워서 실전에 투입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눈에 안보이고, 보이더라도 전공을 수령이 가로채버리니 싸워본대야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이항복이 부끄러운 얼굴로 한켠에 앉은 정충신을 향해 물었다.

“받아적고 있느냐? 적을 것은 바로 적어야 한다.”

“대감마님, 제 머릿속에 담고 있사옵니다.”

“아니다. 지필묵이 옆에 있으니 일일이 받아적거라. 귀한 말씀이다.”

정충신이 지필묵을 끄집어내 두 사람의 대화를 받아 적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양식을 제대로 공급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양식이 제대로 공급되지 아니한데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이항복은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면 어떻게 한단 말이오?”

“급료병이 있어야 한단 말이지요. 급료병 일인당 월 백미 닷말씩 지급하는 직업병사 말입니다. 의무병은 계병제에서 필요한 병력이지만 군사는 그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병에는 반드시 보수가 지급되어야 합니다.”

“또 말해보시오.”

“군사훈련소가 있습니까.”

“각 중군장, 별장, 천총 파총들이 각 부대에서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백가지 훈련법이 나오겠군요. 전쟁터에 머릿수만 채운다고 싸움이 치러지는 것이 아니듯이 훈련교범이 통일되지 않으면 오합지졸이 됩니다.”

하나하나 되짚어보니 그런 것같다. 조선왕조 이백년을 거쳐오는 동안 문을 숭상하고 무를 철저히 무시했다. 제대로 된 무장(武將)을 배치한 것이라고 해봐야 고려조에 세워진 함경도 6진과 압록강변의 경계병 정도였다. 노략질을 일삼는 거란족, 몽고족, 흉노족 따위 오랑캐를 막는 정도였으니 군사랄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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