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이계홍 역사소설 깃발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89>11장 청년장교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89>11장 청년장교

날씨가 꾸물거린 가운데 눈발이 난분분 휘날리고 있었다. 압록강의 강심은 벌써 꽁꽁 얼어붙어 얼음판이 되었고, 대지 또한 살을 에는 듯한 북방 대륙의 삭풍이 몰아붙여 음산했다.

통군정 아래 연병장엔 깃발이 사납게 나부끼고, 가끔 말들이 히이힝 울면서 앞발로 땅바닥을 찼다. 단위에는 신료들이 앉아있고, 그 옆에 명의 장수가 앉아 있었다. 그는 복색이 노랗고 빨간 도복을 입은데다 머리를 밀어붙인 다음 뒤통수에 꽁지머리를 하고 있어서 단박에 명의 장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 앞에 나와 각지게 지휘하는 별장의 손동작에 따라 기패관(旗牌官)들이 연병장 둘레에서 기를 휘날리고, 한쪽 구석 말 위에 앉아 대기하고 있던 또다른 기패관(騎牌官)들이 깃발을 휘날리며 말을 몰아 연병장을 한바퀴 돈 뒤 본부 앞에 도열하고, 다시 별장이 손을 높이 들어 아래로 가르는 순간, 기병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연병장을 가로질러 기패관 뒤에 섰다.

곧이어 취주악대가 나팔을 불며 앞장서는 가운데 왕이 탄 가마가 연병장으로 들어왔다. 단상의 모든 신료들이 일어섰으나 명의 장수는 그대로 앉아있었다. 상당히 건방진 태도였다. 그러나 그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단 앞에 악대가 멈춰서고 뒤이어 왕이 가마에서 내려 궁중 신하들이 뒤따르는 중에 단위로 올라섰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신료들이 읍을 하고, 왕이 가까이 오자 명의 장수가 그제서야 벌떡 일어나더니 90도 각도로 허리를 꺾어 읍했다. 삐딱하게 그를 보았던 조정신료들의 의구심이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하긴 그는 명의 장수지, 조선의 장수가 아니고, 왕의 신하는 더더군다나 아닌 것이다. 왕이 앞에 이르자 예를 다하는 것은 장수다운 풍모였다. 그가 왕 앞에서 소리쳤다.

“명군 이여송 부대의 참장이며, 신기영 부참장이자 남병사 사령관 낙상지 문안 드리옵니다!”

“내 익히 들어 알고 있소. 우리 조선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듣고 과인이 낙 장수를 직접 초청하라고 일렀소. 오늘은 우리의 군대가 얼마만큼 기력을 회복하고 있는지 낙 장수께서 직접 참관하고, 기탄없는 질책을 해주길 부탁하는 바이오.”

왕이 말하자 그가 더욱 머리를 수그린 다음 말했다.

“이항복 병조판서로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만, 조선군대가 오합지졸을 넘어 요근래 기강을 잡았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가 보는 한은 미심쩍은 바가 있으나 성스러운 자리에서 다 말할 수는 없고, 한번 지켜보도록 하지요.”

왕이 용좌에 좌정하고 그의 곁에 낙상지가 앉았다. 그 옆의 이항복 병조판서가 별장에게 지시를 하자 별장이 군호를 외쳤다.

“투창부대 출장!”

그러자 밖에 대기하고 있던 투창부대원들이 우렁찬 고함소리와 함께 연병장으로 뛰어들어왔다.

“장검부대 출장!”

장검부대가 들어오고, 뒤이어 군호에 따라 화포부대, 궁수부대, 석전부대, 특수전부대가 차례로 들어왔다.

“상감마마, 날씨가 매서우니 특수전부대의 대련만 보기로 합지요.”

왕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를 받아 이항복이 별장에게 눈으로 지시하자 별장이 연병장을 향해 소리쳤다.

“특수전 부대 전투대형으로 헤쳐모엿!”

특수전 부대가 헤쳐모여서 줄을 정돈한 가운데 교관의 호령에 따라 전통무예인 권법, 택견, 태권이 혼합된 무예동작을 선보였다. 이들이 착착 기계처럼 움직일 때마다 연병장의 먼지가 뿌옇게 일었다.

“낙 장수에게 보이기 위해 이틀 사이에 특별히 고안한 무예올시다.”

이항복 병조판서가 설명했다.

“저기 맨 앞에 대원의 실력이 뛰어나군요. 어디서 본 대원 같은데, 몇 품계 위급일 정도로 아주 동작이 절도있고, 용맹스럽군요.”

낙상지가 감격스런 표정을 지었다.

“저 병사가 낙 장군도 만났던 청년이올시다. 소신의 집에 있는 정충신이란 청년이옵니다.”

잠깐 스치듯이 본 데다 도복을 차려입었기 때문에 낙상지는 못알아보고 있었다.

낙상지가 스스로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곁의 왕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그 목소리는 대지를 훑는 거친 삭풍과 대원들의 기합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지만, 만족한 웃음을 짓는 것으로 보아 정충신에게 놀라는 모습이 역력했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계홍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