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일 남도일보 대기자의 세상 읽기

여수산업단지 비정규직들의 슬픈 죽음

박준일<본사 대기자>

한 젊은이가 안전사고로 죽었다. 그리고 얼마 후 회사에는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어 1천4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그의 죽음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올해 3월 14일.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합성고무 제조업체인 롯데베르살리스 엘라스토머스에서 협력업체 직원이었던 32살 된 한 젊은이가 포장공정 현장에서 청소를 하던 중 로봇 팔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경찰은 업체 관계자를 불러 사고원인 조사에 나섰으며 고용노동부 여수지청도 업체가 일하던 작업 공간에 제대로 안전관리 대책을 세웠는지 등을 조사했다. 이 업체에서는 같은 날 오전 3시간여 동안 화재가 발생해 자체 진화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감사를 앞두고 고용노동부 여수지청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감독기관에서는 4월 5일 롯데베르살리스 엘라스토머스에 대해 “추락위험 방지조치를 하지 않았고 회전체 낙하물 위험 방호조치를 하지 않는 등 5개 항을 위반했다”며 1천4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지도 감독관청은 사람이 죽었지만 회사에 고작 1천400만 원의 과태료를 물린 것으로 이 사고를 일단락한 것이다. 물론 회사는 유가족들에게 얼마간의 합의금을 지급했을 것이다. 이 회사는 롯데 케미칼이 50% 출자해 이탈리아 기업인 베르살리스와 합작한 합성고무를 생산하고 있으며 자산이 2017년 기준 7천575억 원이다.

그리고 지난 10월 4일. 여수산단 내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 여수화력발전소에서 불이나 화재 현장에 있던 37살의 젊은 근로자 1명이 숨지고 4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이날 불은 석탄 저장소 옆에 있는 집진 주머니 필터 교체작업 중 발생했다. 남동발전은 연간 매출액만도 2017년 기준 5조 4천억 원에 이르고 직원들 평균 연봉도 8천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알려진 대형 공기업이다.

지도 감독기관인 고용노동부는 이 회사에도 과태료를 물리고 회사는 유가족들에게 합의금을 주고 이 사고를 일단락할 것이다. 여수산단에서만 올해 들어 11건의 사고가 발생해 4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에게는 법이 규정한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모든 죽음은 숙연하고 슬프다. 그러나 이 경우 유독 가슴을 아릿하게 한다. 여수산단의 억울한 죽음은 협력업체 직원들의 몫이었다. 고통과 비참함 등이 응축된 슬픈 생각이 든다. 그들은 말이 좋아 협력업체 직원이지 모두 비정규직들이다.

고용노동부의 여수산단 내 산업 안전 지도 감독 현황을 보면 지난해 33건을 적발해 3건을 사법 조치하고 나머지 30건은 시정조치와 함께 과태료를 부과했다. 과태료는 총 4천374만 원으로 업체당 145만 원에 불과했다. 올해도 지난 7월 말 현재 18건을 적발해 7건의 사법 조치와 함께 18건 전체에 시정조치 및 과태료를 부과했다. 과태료는 총 8천463만 원으로 업체당 470만 원이었다.

특히 18개 업체는 시정조치와 함께 96만 원에서 10만 원까지의 과태료가 각각 부과됐다. 연간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 씩의 매출을 올리는 업체에 안전사고 위반으로 물리는 과태료 10만 원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즉 무늬만 단속인 셈이다. 처벌 수위가 낮다 보니 적발하고 처벌해도 소용이 없다. 안전불감증이 일상화됐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964명이 목숨을 잃었다. 매일 3명이 작업현장에서 죽음을 맞는다.

여수산단뿐만 아니라 모든 사업장에는 24시간 안전사고가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안전사고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업에만 맡겨 놓아서는 안된다. 안전사고에 대한 제도적인 뒷받침없이 기업의 양심과 윤리에만 의존하기에는 너무 많은 목숨을 잃게 된다. 더욱 강력한 지도 감독과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 안전 소홀로 사망사고나 부상자가 발생하면 업체의 자산과 연간 매출액 규모 등 크기에 따라 일정 기간 조업중단과 많게는 수십억 원의 과태료를 물려도 지금처럼 기업들이 작업현장을 소홀히 할까.

물론 정부가 각종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 관련 법이 있다. 현재 기업에 적용되는 안전관련법은 산업안전보건법과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등 최소 8개 이상이나 된다. 문제는 많은 법이 있지만 지키지 않다가 단속에 걸려도 이른바 몇백만 원 심지어 몇십만 원의 과태료만 내면 그만이다는 사고방식이 더 큰 사고를 일으키고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 지금처럼 사람이 죽어도 기껏 1천만 원의 과태료만 내면 된다면 사람 목숨값은 1천만 원이라는 생명경시 풍조마저 생겨날까 무섭다. 약자에 대한 멸시가 일상화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권이나 언론이 국정감사가 열리는 10월에만 반짝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문제 제기가 필요한 대목이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