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1천년을 지켜온 사람들의 숨결은…
국립광주박물관 전라도 정도 1000년 특별전 개막
내년 2월10일까지 지속…국보·보물 등 250여점 전시

모눈종이에 그린 전라도 지도. 영조 연간(1724~1776) 제작, 보물 제1588호, 규장각 소장

‘전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사용된 행정구역 명칭이다. 전라도는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 현종 9년(1018)에 옛 백제의 땅이었던 강남도(江南道)와 해양도(海陽道)를 합쳐 만든 행정구역이 탄생했다. 이 지역은 목(牧)이 설치된‘전주’와 ‘나주’를 중심으로 하는 여러 군과 현을 묶어‘전라도’라 부르게 됐다. 이 전라도에는 ‘전라도’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훨씬 이전부터 이 땅을 일구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매우 개방적이며 진보적이어서 다른 문명을 흡수하는데 거리낌이 없었으며, 우리 역사를 뒤흔든 많은 개혁 사상을 내놓았다. 그리고 나라의 위기 때마다 충의와 저력을 발휘하여 이 땅을 넘어 한반도를 수호했다.

왕궁리 출토 금동여래입상.

국립광주박물관이 전라도 정도(定道) 1천 년을 맞아 국보 5점과 보물 38점을 비롯해 유물 250여 점을 선보이는 특별전 ‘전라천년(全羅千年) - 전라도 천년을 지켜온 사람들’을 23일 개막했다. 내년 2월1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전라도라는 지역공동체를 바탕으로 천년의 삶을 일구고 풍요로운 문화를 꽃피우며, 더 나아가 나라를 지키며 천년의 역사를 함께 한‘사람들’의 이야기를 재조명한다. 전시에는 왕궁리 출토 금동여래입상(국립중앙박물관)과 조선왕조실록(국립고궁박물관) 등 국보 5점과 선조 하사 서산대사 교지 등 38점의 보물을 포함한 250여 점의 유물이 출품됐다.

전시는 총 5부로 구성됐다.

1부는 전라도 정도 천년의 역사적 근거가 되는 사실이 실린 ‘고려사’부터 시작한다. 이후 우리 땅 전라도의 다양한 모습이 담긴 조선지도를 통해 전라도의 생생한 모습을 살펴본다. 보물 제1588호 호남지도(규장각 소장)와 함께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한 ‘전라남북도여지도’의 53개 군현도가 전시된다.

이순신 초상. 조선 후기, 비단에 채색.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6호,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2부는 전라도가 ‘전라도’라 불리기 이전부터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기원 전후 역사를 시작한 광주 신창동 유적 출토 인골은 전라도 사람들의 실체적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이후 고조선의 준왕, 마한의 여러 소국, 전라도 지역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실제적 지배체제를 이룬 백제, 그리고 전라도에 왕도의 꿈을 담은 백제의 무왕까지 이 땅에 새로운 문명이 더해져 가는 과정도 살펴본다. 전시에 출품된 완주 봉림사지 석조보살상(전북대박물관 소장)과 익산 왕궁리 5층 석탑 출토 금동여래좌상(국보 제123호) 등은 찰나의 왕조, 즉 후백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3부는 전라도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전라도 천년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이 땅에는 왕조의 수도가 자리한 적이 없었다. 대신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개혁적이며 진보적인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눌(知訥 1158~1210)과 요세(了世 1163~1245)는 타락한 정치계와 결탁한 기존 불교의 개혁을 외치며 순천과 강진에서 활동했다. 전주의 유학자들은 ‘예기’에서 말하는‘대동’사상에 주목하여 새로운 신분 질서의 정립을 꿈꾸었다. 19세기 말, 정읍의 녹두장군은 ‘다시 사람이 하늘이 되는 세상’을 위하여 같은 꿈을 꾸는 이들과 일어나 싸웠다.

4부는 전라도와 나라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때로는 부처의 가르침을 따라, 때로는 대의명분을 따라, 이 땅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 전장에 나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임진왜란 당시 불살계(不殺戒)의 계율에도 불구하고 전장에 나간 스님들이 있었고, 왕에 대한 충의를 지키기 위해 일어선 유생 의병들이 있었다. 그리고 한말 빼앗긴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나선 이름 없는‘사람들’도 있었다. 전라도 땅에 보관되고 있었던 조선왕조의 역사인 실록과 어진을 지키기 위하여 밤낮없이 불침번을 선 수직(守直) 유생 안의(1529~1596)와 손홍록(1537~1600)의 이야기도 있다.

5부는 전라도를 유행한 외지인들의 기행문과, 전라도를 그린 전라도 출신 근현대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전라도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을 제시하며 마무리된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천년의 세월 동안 절의와 도학에 뿌리를 둔 전라도 사람들은 국가가 어려움에 처할 때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구하며, 함께 하는 공동체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꿈꾸었고 이 땅에 뿌리내린 의기의 정신은 최근의 민주화운동까지 이어진 생생한 역사의 정신이 되고 있다”면서 “이번 전시가 전라도의 천년을 지켜온 사람들의 숨결을 이어 다시 앞으로 도약하게 하는 돌아봄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 기간 중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야간개장에는 이번 특별전의 내용을 주제로 한 큐레이터와의 만남이 준비된다.
/노정훈 기자 hun7334@namdonews.com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