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정세영 정치부 기자>

시 한 편을 마주한 건 고등학교 시절로 기억한다. 당시 영어를 가르치던 40대 미혼의 여자 선생님은 우리에게 영문시 한 편을 읊어줬다. 20세기 미국 최고 시인으로 손꼽히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중략…)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시가 준 울림은 아마도 그 선생님 덕택이었을 지도 모른다. 당시만 해도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의 여성이 미혼으로 산다는 게 흔하지도, 쉽지도 않았다. 시대가 그랬다. 우습게도 그 사람의 가치관과 일생이 시 한편으로 나에게 걸어오는 듯한 느낌이 불현듯 들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던 필자의 복잡한 심경도 한 몫했다. 미래의 나를 무수히 상상하며 꿈 꾸던 그 시절, 성적이란 현실과 무한대의 이상 사이 반복되는 질문에는 정답이 없었다. 예행연습 없이 실전 뿐인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기에 더더욱 그랬다.

광주시가 어느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노사민정 대타협을 전제로 지속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게 핵심인 ‘광주형 일자리’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덤불숲과 가시밭길을 헤치며 간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신기루가 펼쳐져 있을 수도, 꽃밭이 넘실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끝까지 걸어가 봐야 알 수 있다. 엔딩은 모르지만 꼭 가야할 길을 가본 뒤, 끝자락에 선 우리는 한숨 대신 지역 청년들의 웃음과 조우하길 고대한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그 길은 희망으로 향한 잠깐의 에움길이었다고,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이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