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을 허물다
강신중 <법무법인 강율 대표변호사·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아시아문화원 감사>

강신중 변호사

민주 성지이자 예향인 광주에서 세계적인 현대미술축제인 광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역사적 장소에서 2년마다 매번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는 아트 프로젝트인 광주비엔날레는 어느덧 12회째다. 1995년 처음 열린 광주비엔날레는 ‘경계를 넘어서’라는 주제로 세계화라는 시대정신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시작하였고, 23년이 지난 지금 지정학적 경계를 넘어 정치, 경제, 인종, 세대 간 복잡해지고 눈에 보이지 않게 굳어지고 있는 ‘상상된 경계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 제기하고 있다. 최근 제주도의 예멘 난민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접하기도 한 우리는 지구촌 식민의 역사와 냉전, 이주 그리고 난민문제가 더 이상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기존 질서는 경계를 만들어 피아를 구분지으려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경계를 허물어가려는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

2018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한 42개국 163명의 작가들의 시선은 김선정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의 표현을 빌리면 “지난 20세기 근대적 관점을 회고하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전쟁과 분단, 냉전, 독재 등의 근대적 잔상과 21세기 포스트인터넷 시대에서의 새로운 격차와 소외를 고찰하며, 이를 뛰어넘은 미래적 가치와 상상력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전의 광주비엔날레 기획은 일인 총감독이 통일된 주제를 풀어가는 방식이었지만, 이번 2018광주비엔날레는 11인의 큐레이터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우리 세계에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입증하기 까다로운 복잡 미묘한 경계들을 상상하며 예술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는 방식이라는 특색이 있고, 메인전시관 뿐만 아니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구)국군광주병원으로 전시공간이 확대되어 전시공간 역시 경계를 넘어선 방식으로 전시되어 있다.

참여 작품들은 7가지 세부주제로 나누어진다. ① 상상된 국가들/모던 유토피아 ② 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 ③ 종말들 : 포스트 인터넷 시대의 참여 정치 ④ 귀환 ⑤ 지진 : 충돌하는 경계들, ⑥ 생존의 기술 : 집결하기, 지속하기, 변화하기 그리고 ⑦ 북한미술 : 사회주의 사실주의 패러독스이다.

용봉동 비엔날레 메인전시관에서 처음 만나는 섹션은 클라라 킴이 기획한 ‘상상된 국가들/모던 유토피아’이다. 1950-1970년대 라틴 아메리카, 중동 및 아시아의 사회적, 정치적 격변기 속 모더니즘과 건축, 국가 건설의 결과물인 모더니즘 건축물이 지금은 빛바랜 과거 유산으로 변한 현실을 보여준다. 2, 3전시실에서 만나는 ‘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 주제 작품들은 가까운 이웃인 동남아시아를 소재로 이주와 이로 인해 발생되는 복잡한 연계성을 드러낸다. 이주가 위협으로 간주되기도 하는 현 상황 속에서 배제와 포용, 인도주의와 국가안보라는 대조적인 의미를 탐색해 볼 기회를 준다. 디뎀 외츠베크 <꿈의 여행>은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는 제1세계 국가들만으로 이루어진 상상지도를 만들어 다른 제3세계 국민들의 불평등한 계급구조와 이동 제한을 꼬집어주어 눈길을 끈다.

크리스틴 Y 킴과 리타 곤잘레스가 기획한 ‘종말들 : 포스트 인터넷 시대의 참여 정치’는 인터넷에 의한 참여와 권력, 디지털 격차, 신자유주의에 대한 생각의 범위를 반영하는 주제이다. 전시작품 중에서 선우훈의 <가장 평면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 <평면이 새로운 깊이다>는 웹툰 형식에 기반하여 서울시청 광장을 표현한다. 아이폰 화면이 개인 옆을 지나가는 시도는 집단적 디지털 커뮤니케이션과 포스트 인터넷 환경을 통해 민주정치의 시작과 동시에 왜곡된 이미지도 생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5전시실의 ‘귀환’은 비엔날레 아카이브에 대한 탐구이다. 관객들이 과거를 반추하며 현재를 역사 안으로 끌어들이는 의도가 엿보인다. 1980년의 5.18 광주민주화 항쟁 당시 15편의 선언문이 담긴 기록물은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함성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마련된 3개의 전시는 다양한 스토리와 생각의 지평을 넓혀준다. ‘지진 : 충돌하는 경계들’은 인종과 젠더, 식민 역사, 환경과 프라이버시, 이주, 감시, 국경의 문제를 다룬다. 전방위에서 이루어졌던 과거의 폭력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부서질 수 있는 ‘지진’을 유발한다는 점을 주목한다.

생존의 기술 : 집결하기, 지속하기, 변화하기’는 삶과 예술의 집결, 변화, 지속 가능성을 물어보고 해결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박상화 <2018 무등판타지아-사유의 가상정원>은 우리 무등산을 신성한 생명의 공간으로, 환상과 서정이 결합된 도원경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정유승의 <언니네 상담소>는 성매매에 대한 사회인식변화와 성매매근절을 위한 연대사업을 홍보하고 여성의 인권과 가치를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문범강이 기획한 ‘북한미술 :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는 현재 남북화해와 평화공존으로 가는 사회적 담론과 맞물려있다. 선전과 선동이 특징인 북한미술의 사회주의, 사실주의 화풍만이 아닌 다채로운 ‘조선화’를 감상할 수 있고, 북한예술작품에 등장하는 북한 주민과 풍광을 접할 수 있는 드문 기회이다.

문화는 우리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한다. 광주비엔날레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총체적 모습을 시각언어로 보여주는 미술행사이다. 특히 광주비엔날레는 늘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새로운 영감,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보여준다. 구악과 독재에 항거했던 광주에서 다채로운 사유와 경험의 장이 열리고 있다. 개막되어 반환점을 넘었고 오는 11월 11일 마감되는 2018광주비엔날레, 깊어가는 가을에 뜻깊은 문화예술 축제에 동참하는 기쁨을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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