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남 남도일보 편집국장의 우다방편지
한전공대 부지문제에 매달릴 때 아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이정희 상임감사위원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한전공대 설립과 관련, 주변 여건이 그리 순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감사는 지난 8월 14일 취임한 뒤 한전공대 설립문제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광주·전남공동(빛가람)혁신도시의 미래가 걸려 있는 사안이란 판단에서다. 빛가람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에너지밸리 조성 뿐만 아니라 지역과 국가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프로젝트다. 전남 담양 출신인 그는 광주·전남에 대한 애착이 그 누구보다 강하다. 그래서 한전공대는 반드시 설립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 상임감사가 보는 한전공대 설립 문제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심각하다. 그의 주장처럼 부지선정 문제도 중요하지만 설립 자체를 놓고 분위기가 썩 좋지 않다. 우선 내부적으로 김종갑 한전 사장의 한전공대 설립 의지는 확고하지만 일부 비상임이사들은 탐탁치 않게 보고 있다. 재원 조달 부문이 큰 걸림돌이다. 대학 설립에만 7천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되면서 적자 규모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실제로 한전은 지난해 4분기 1천294억원, 올해 1분기 1천276억원, 2분기 6천871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3분기 연속 적자 규모만 9천400억원 규모다. 올 3분기 적자까지 더하면 최근 1년간 1조원 넘는 영업적자를 낸 셈이다. 3분기 연속 영업적자는 2012년 2분기(2011년 4분기, 2012년 1·2분기) 이후 처음이다.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이 속도를 내면 적자 규모는 더 커질수 밖에 없다.

한전은 최근 중간 용역보고회에서 2022년 3월 개교, 학생 1천명, 교수 100명, 부지 120만㎡ 규모의 한전공대 설립안을 발표했다. 설령 예정대로 한전공대가 설립되더라도 막대한 운영비 등이 지원되지 않으면 ‘세계 최고의 공대’ 로 우뚝 설 수 없다. 자칫 잘못하면 옛 ‘수도공대’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자유한국당 박맹우 의원(울산 남구을)은 지난 1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탈원전 정책 실행 과정에서 한전의 재정 악화라는 부작용이 도출됐다”며 “한전공대 설립이 대통령 공약이기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도그마에서 벗어나 급변한 현실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한전공대 설립은 기관 목적에 부합하지 않고 탈원전 정책으로 재정 파탄 위기에서 주주가 동의하겠느냐”며 “대학 정원도 3만여명 남아도는 상황에서 천문학적 돈을 들여 대학을 짓는 게 말이 안 된다”고 김종갑 사장을 몰아붙였다.

게다가 광주·전남지역 국회의원들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광주 서구갑)을 제외하면 한전공대 설립 적극 지원 사격에 나설 의원이 거의 없다. 광주·전남 여당 의원이 단 2명 뿐이어서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시와 전남도, 지방의회가 촉구하고 있는 한전공대 설립 특별법 제정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한전공대는 에너지밸리의 거점이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는 인재육성의 요람이며, 단순히 공과대학 하나를 설립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성장동력의 균형발전을 위한 국가적 포석”이라는 이들의 주장이 국회에서 받아들여질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한전공대 설립이 시대적 흐름임에는 틀림없다. 이용섭 광주시장, 김영록 전남지사, 송갑석 민주당 광주시당위원장, 서삼석 민주당 전남도당위원장 등은 지난 21일 공동 성명을 내고 “한전공대 부지는 일체의 정치적·지역적 고려 없이 최선의 부지를 한전이 선정하고, 그 결과를 존중하고 지지한다”고 했다. 다음날 한전은 “‘용역 내 전문가위원회의 입지선정’과 ‘지자체의 합의 추천’이라는 투트랙 방식으로 부지를 선정하겠다는 방침은 변함이 없다”며 “어떤 방법이든 올해 안에 부지선정 절차가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전공대 설립 의지를 거듭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부지 문제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도 담겨져 있다.

이제 공은 우리 모두에게 넘어왔다. 일부 기초단체와 기초의회의 ‘자기 지역 유치’ 주장은 중단돼야 한다. 지역이 똘똘 뭉쳐 한전공대 설립 당위성을 알려야 한다. 지역 국회의원들도 소속 정당이나 이해관계 등을 떠나 특별법 제정에 앞장서야 한다. 만에 하나 한전공대 설립이 무산될 경우 우리는 후손들에게 씻지 못할 오점을 남길 것이다.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우리가 되도록 한전공대 설립을 ‘시대적 사명’으로 여기고 난관을 극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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