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205>

12장 지체와 문벌을 넘다

정충신이 이항복 병조판서에게 가서 아뢰었다.

“왜의 정탐병으로부터 입수한 정보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우리는 의주를 철저히 방비하면 될 것이 아니냐. 보아하니 고니시 1번대, 가토 2번대, 구로다 3번대가 한결같이 왕의 목을 따러 온다는 첩보가 들어오고 있구나.”

“벌써 들어왔습니다.”

“뭣이?”

이항복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정충신을 바라보았다.

“왜의 간자들이 벌써 왕의 목을 따러 왔나이다. 그것을 제가 적발했나이다.”

“네가 어떻게?”

“옥에 가둔 왜의 간자들을 심문한 결과, 이자들이 왕의 목을 베어가면 은 백관에 비단 백필, 작위를 받아 평생 자자손손 팔자를 고친다는 말을 듣고 산을 타고 강을 건너서 의주땅에까지 숨어들어 왔나이다. 이런 간자들이 다섯 조나 된다고 하옵니다. 각 군단 지휘관들이 빠릇빠릇한 부하를 선발해 밀명을 내려서 경쟁적으로 올라왔다고 하는 바, 그중 한 패거리가 행재소까지 잠입해왔나이다.”

“어떻게 적발했단 말이냐?”

“서문에서 얼쩡거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의주 뒷골목 건달패들처럼 행동하는데 아무래도 수작이 이상하고, 말씨가 서툴고, 숨긴 칼집이 얼핏 왜의 문양이어서 당장에 체포했사옵니다.”

“과연 성상께서 선견지명이 있도다. 상감마마께옵서 주로 출입하시는 서문 초관으로 너를 임명하셨으니 마마의 혜안이 똑부러지지 않느냐 말이다. 다른 초관 같았으면 그런 간자들을 적발해낼 수 있었겠는가. 큰 상을 내릴 일이로다. 진실로 하마터면 큰 일날 뻔한 것을 네가 막았도다. 그런데 그런 기밀을 그자들이 고분고분 고변하더냐?”

“불지 않아서 어깨뼈를 분질러놓았습니다. 내빼지 못하도록 발가락 세 개도 도끼로 찍어버렸습니다.”

“천한 것들을 그렇게까지 해서야 되겠느냐만, 궁중을 기웃거렸다면 중국 같아서는 묶어놓고 한뜸한뜸 포를 떠서 죽이는 형벌을 받을 놈들이다.”

“다행히도 나리께서 우려하신 것과 달리 왜군 병사들이 의주로 올라오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뜻이냐?”

“기후와 지리가 우리를 돕고 있나이다. 한 겨울철에는 왜놈들은 사루마다나 훈도시, 잘하면 유카타를 걸치고 사는 놈들인지라 조선반도의 북풍 한파를 견디지 못하옵니다. 아군은 살을 에는 맹추위라는 또다른 지원병의 도움으로 저놈들을 꼼짝없이 묶어두게 되었사옵니다. 그러니 지금이 기회이옵니다. 오줌을 싸면 당장 얼어버리는 지금이 저놈들을 치러가야 할 적기이옵니다.”

“이여송 군대가 잘 움직이지 않는다. 뙤놈들이란 워낙에 게으르고, 탐악질이 심해서 이래저래 골칫거리다. 그렇더라도 때가 때인지라 빨리 가서 독촉해야 하겠구나.”

“왜놈들은 한 겨울의 벌처럼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 주력이 쫓아가서 조사불고 뽀사부러도 될 듯합니다.”

“조사불고 뽀사부린다는 말은 너의 향토말인가?”

“그렇사옵니다. 시원하게 봐버린다는 뜻이옵니다. 어쨌거나 우리가 공성전에 먼저 투입되어 전과를 올려야 하옵니다. 자신감부터 길러야 다는 전쟁에서도 전과를 올릴 수 있습니다.”

“과연이로다. 하지만 일 리가 있는 말이다만, 우리 힘만으로는 어렵다. 기왕에 원병이 왔으니 명군과 합동작전을 꾸미는 것이다.”

“제가 동충평이라는 명군 기병과 낙상지 장군으로부터 들은 것도 있나이다.”

“또 첩보사항인가.”

“그렇습니다. 명군의 남방병사들이 닝보라는 항구에서 뱃길을 타고 북상해 규슈를 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하옵니다.”

정충신은 낙상지의 남방병사 중 저장성에 잔류한 부대가 일본을 치기 위해 배를 건조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낙상지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었다. 해안을 노략질하는 일본땅을 아예 점령해버린다는 계획이었다. 본래는 왜군이 그 뱃길을 타고 닝보를 쳐서 중국 대륙을 점령하려고 했으나 남행의 뱃길이 태평양 남쪽으로부터 불어오는 태풍을 맞게돼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에 중국의 배는 태풍을 등에 받아 북상하기 때문에 쉽게 시고쿠와 규슈를 갈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의 남방병사들이 용맹한 것은 왜의 해적들과 대적하면서 많은 실전경험을 쌓은 결과였고, 그래서 왜군은 남방병사의 완강한 저항을 뚫지 못하고 대신 조선땅을 거쳐서 요동반도-북경을 공격노선으로 택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남방병사들이 일본 본토로 들어갈 시, 우리는 조선반도에 들어온 놈들을 격파하는 것입니다. 양쪽에서 협공을 하니 힘이 빠져서 필시 궤멸될 것입니다. 이때 우리도 쓰시마를 거쳐 후쿠오카로 들어가 왜놈땅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역으로 우리와 명이 일본 본토를 반토막낼 기회가 온 것입니다.”

“하, 네가 그런 생각까지 했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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