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현장>이름 없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영웅들
이은창(중·서부취재본부 기자)

지난달 22일 전남 무안군에 위치한 전남지방경찰청 앞뜰에선 지역민들에게 뜻깊은 행사 하나가 열렸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의 지휘 아래 신군부의 발포명령을 거부하고, 총기를 자진 반납한 뒤 계엄군에 맞서던 시민들을 보호하려다 산화한 경찰관 4명의 부조상이 전남경찰청 앞뜰에 세워진 것.

5·18 당시 함평경찰서 소속이던 고 정충길(당시 39세), 이세홍(39), 박기웅(38) 경사와 강정웅(38) 경장은 신군부의 간경진압에 격화된 시민들을 보호하다가 돌진하는 버스에 치여 숨졌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 광주시민들에겐 한 사람의 이웃이었던 이들은 1980년 5월 20일 방석복을 입은채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을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동안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름들이었다.

부조상 제막식에서 유가족들은 이런 인사말을 전했다. “네 분의 아버님들을 위민(爲民) 경찰의 표상으로 세울 수 있는 날이 왔다는 것이 꿈만 같고 지금도 꿈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당신들의 죽음, 시민을 지키고 국민을 붙들어야 한다는 그 명령과 책임과 의무 속에서 혼란을 버텨내야 했고, 버텨내고자 했던 당신들을 기억해주는 이들이 이제 이렇게 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기억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는 유가족의 말이 그동안 5·18의 숨은 영웅들을 망각했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참으로 무거웠다.

하지만 아직도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경찰관은 수십명에 달한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발포, 무장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파면·직위해제 등 징계를 받은 경찰은 약 75명. 최근에서야 명예를 회복한 고 안병하 치안감과 이준규 목포경찰서장 외에도 11명이 의원면직 형태로 당시 경찰복을 벗어야 했다. 일반 직원 64명도 감봉·견책·계고 등 징계를 받았다.

이들 모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다. 시민 보호가 먼저라는 이유로 부당징계를 받아야 했던 이들이 하루 빨리 5·18유공자로 지정돼 명예 회복이 이뤄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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