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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208>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208>

12장 지체와 문벌을 넘다

“평양 가는 것은 좋다만 사대, 자주국방, 조선반도가 두 토막 난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두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상감마마께옵서나 조정신료들이 중국 아니면 나라가 거덜날 것처럼 하는디, 고것은 아니지요. 신료들이 더 난린디, 그 밑에서 호의호식하기 땀시 그런가요? 후금이 명을 노리고 있는디, 우리는 명만 쳐다봐야 하나요? 그러다 명이 망하면요? 명은 무능 부패한데다 노국(老國)으로서 망할 징조가 보이는디, 왜 명을 우러르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이적시하는지 모르겠습니다요. 율곡 선생이 자주국방 하자고 말씀하신 것은 거적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요. 우리 것은 우리가 지켜야지요. 명군 놈들 하는 짓 보십시오. 못된 짓은 왜군 놈들보다 더 한다니까요. 가난한 백성들 재산 약탈에 여자 겁탈에 온 나라가 탈탈 털리고 있습니다요.”

정충신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부정의한 나라의 힘을 빌려서 자기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 참으로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후금의 동태도 살피자고 하니 후금 간자냐고 뒤집어 씌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이라니 참 기가 찰 노릇이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들, 그러면서도 견고한 기득세력이 되어서 세상을 쪄누르고 있다.

“지금 때가 어느때냐. 함부로 말할 때가 아니다. 튀어나오면 꺾이는 법이다.”

“대감 마님, 허위를 반박하지 않으면 진실이 되어버립니다요.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닙니다요. 눈 앞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을 하라고 하신 말씀이 대감 마님 뜻 아니었습니까?”

이항복은 마음 속으로 느낀 것이 있었으나 엄하게 꾸짖었다.

“흉중의 목소리는 무겁게 담아두어라. 인간이란 모름지기 시와 때와 곳이 있는 법, 시간을 기다릴 줄도 알고, 장소도 가려볼 줄 알며, 이치도 살펴야 하느니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지체를 낮추는 법이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갓 태어난 강아지 호랑이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은 거저 나온 말이 아니다. 평양성으로 간다고 하였으니 준비하거라. 낙상지 장군이 곧 병조로 들어올 것이다. 정 초관이 직접 낙 장수에게 평양 침투 계획을 설명하라. 용호영 좌초관 임무는 후임에게 맡길 것이다.”

얼마후 낙상지 장군이 들어왔다. 정충신이 군기대 초소에 머물고 있을 때 이항복 대감이 불렀다. 정충신이 병판 집무실로 들어서자 낙상지가 의자에 정중히 앉아있었다. 정충신은 두 팔을 각지게 앞으로 모으고 예를 취했다.

“정충신 초관이 직접 설명하렸다.”

이항복 병판이 정충신을 바라보며 지시했다.

“네. 대지가 꽁공 얼어붙을 때 왜놈들을 부솨부러야 합니다. 광야에 매서운 바람이 불고, 대지에 추위가 쌔하면 왜군들은 겨울 파리처럼 꼼짝 못하고 떨고 있을 것입니다.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떨면 그자들은 지대로 활동하들 못하지요. 이때 잘근잘근 뽀사부리는 것입니다. 한 겨울, 공성전을 벌이기가 딱 좋습니다. 저놈들은 보병전 밖에 모르는데다 엄동설한에 벌벌 떨고 있으니 기마들이 밀어붙이면 꼼짝없이 당하게 될 것입니다. 명군 기병대와 함께 우리 기병부대가 기병전을 펼치면 평양성 탈환은 어렵지 않게 이룰 것이옵니다.”

잠시 생각하던 낙상지가 물었다.

“초관의 나이가 열여덟이라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정충신이 대답하자 이항복이 덧붙였다.

“신라 대에 화랑들은 나이 열여섯이고, 관창은 열다섯, 반굴은 열덟이었으니 결코 늦은 나이는 아니올시다. 무서움을 모르는 청년장교요.”

“내 일찍 알아보았습니다. 날렵하고 총명한 정충신 초관을 얻으니 길이 훤히 열린 것 같습니다. 이여송 제독께서 선발대로 나가도록 지시하시었습니다. 정 초관과 동행하는 것이 든든합니다. 헌데 초관 계급으로 가기에는 제 지체가 허락지 않는군요. 제 출정이 초라해 보입니다.”

“그러잖아도 생각하고 있었소이다. 정 초관을 훈련파총으로 승진 임명할 것이오. 임무를 마치면 낙 장수와 함께 훈련도감을 운영해야 하니 미리 훈련파총으로 임명하는 것이오.”

그러면서 이항복 대감이 다시 엄중하게 명령했다.

“정 훈련파총은 평양성 공략을 위해 명군의 향도로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라.”

“네. 성실히 수행하겠습니다. 다만 별도로 다섯의 정탐요원을 주십시오. 그리고 동충평 기병을 저에게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응원병 이십도 붙여주겠다.”

선발대는 새벽에 의주를 출발해 낮에는 산에 숨어 불을 피우고 자고, 밤이면 이동했다. 이렇게 해서 선천-곽산-정주-안주-숙천-순안에 이르러 평양 인근에 당도했다. 순안 서북방면에서 쳐들어갈 요량으로 독자산과 서금강에 진을 쳤다. 산 꼭대기에 기발(騎撥:봉수가 있는 곳에 변방의 군사 정보나 왕명을 말을 타고 전달하던 교통 통신수단)인 관문참(官門站)이 있었는데 왜 군사가 천막을 치고 지키고 있었다. 그곳을 넘어야 평양성에 도달하는 군사요충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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