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209>

12장 지체와 문벌을 넘다

“관문참을 뚫기가 여간 힘들지 않겠는데요?”

정탐병 날쇠가 걱정했다. 관문참은 요새처럼 외인의 침입을 막는 목이 좁고 긴 지형이었다. 그러나 그곳을 지나지 않으면 평양 진입은 어렵다. 어떻게든 진격로를 뚫어야 한다.

“지레 겁먹들 말어. ‘파총 벼슬에 감투 걱정하는 격’이여.”

정충신은 은근히 자신이 파총 벼슬에 있다는 점을 과시하면서 병졸들을 독려했다. 따르던 동충평이 물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가.”

“어려운 일이 닥치기 전에 미리부터 징징 짜지 말란 뜻이여.”

“아하, 그렇군. 우리 중국 속담에도 어떤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지레 걱정한다는 뜻으로

‘강에 도착하기도 전에 강 건널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 벼슬을 하는데 뭔 감투 걱정하느냐는 뜻 아닌가? 하하하, 좌우지간 파총 승진을 축하하오이다.”

동충평이 정충신의 파총 승진을 진정으로 축하하며 자기 일인 양 기뻐했다. 파총은 오군영(五軍營)·관리영(管理營)·총리영(摠理營)에 그 직을 각기 두었으나 명나라 척계광 장수의 ‘기효신서’에 따라 훈련도감에도 이 제도를 신설했다. 훈련도감에는 5인 파총을 두었는데, 정충신이 약관의 나이로 그중 하나가 된 것이다. 파총은 젊은 장교들에게는 선망의 자리였다. 그 자리는 바로 장수로 가는 길목이었다.

“병판대감에게 은공을 갚기 위해서도 반드시 전공으로 답해야 한다.”

정충신은 그렇게 속으로 다졌다. 그러나 공격 진로를 뚫어야 하는데 난감하였다. 정충신은 평양으로 들어가는 파발 역참으로 가서 말을 세웠다.

“여기가 더 위험하지 않은가?”

동충평이 걱정스레 물었다. 역참은 들고 나는 사람과 짐 말, 장사꾼 말, 군마 할 것없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시끄럽기도 하고 말이 많이 새는 곳이었다. 동충평은 몸이 장골이고, 타고온 말 역시 그의 키보다 훨씬 큰 잘생긴 놈이었다. 보기만 해도 늠름했다.

“여기다 말을 세우고 진격로를 뚫읍시다.”

“나는 천마(天馬)와 잠시라도 떨어지면 안되오. 나의 천마는 내 역할의 열배를 하오.”

“아무리 훌륭한 말이라도 적진에 들어갔다가 울음소리를 내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 죽는 것아니여?”

“역참에는 둘 수 없소. 남들이 훔쳐갈 수 있소.”

하긴 보기만 해도 욕심나는 군마였다. 눈이 맑고 키가 큰 말은 명령만 떨어지면 금방 천리를 뛸 것 같았다. 마침 정탐대원이 골짜기 아래를 살피더니 말했다.

“저 집이 무당집입니다. 여긴 내 고향인데 어머니 아버지들이 저 무당집에 자주 드나들었죠. 그곳 마굿간이 있으니 일단 말을 거기다 데려다 놓기로 하죠.”

무당집은 정보의 집합소다.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곳이라 여기고 정충신 일행은 무당집으로 갔다. 무당은 굿을 마친 뒤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일어나 보시오. 급히 점보러 왔소이다.”

정충신이 무당을 깨웠다. 무당은 놀라면서도 단박에 정충신 일파를 알아보았다.

“점보러 오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이시오? 왜놈들도 오더니 조선군도 오는군. 점보지 않으면서도 내가 그렇게 필요한 사람이오?”

“왜군 근거지를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왜군이 지리가 좋은 곳을 물색해 달라고 해서 관문참 외에 가막골, 멧골, 샛들평야를 점지해주었는데 한두 곳을 빼고 그들이 거기에 주둔하고 있소.”

무당은 묻지도 않은 말을 해주었다. 정충신은 찾아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당골래는 그자들 편인가?”

“돈 받는데 가릴 수 있소? 하지만 내가 일러준 곳은 모두 험지요. 적이 뚫으면 금방 뚫릴 곳이요.”

“우리가 적입니까?”

“그놈들이 볼 때는 적이요. 그나저나 내 아이를 데려갔소. 인질로 잡아간다고 했소. 헛수작하면 아이를 죽인다고요. 소화라는 과년한 딸아이인데, 애비도 없이 자란 불쌍한 년이오.”

“아비는 어디 갔소?”

“무당년한테 남편이 있겠소? 인연 닿으면 다 남편이지. 그래도 애지중지하는 내 핏줄이니 제발 구출해주시오. 은 스무 냥 드리리다.”

정충신은 무당이 가리켜 준대로 언덕에 올라 왜군이 주둔한 지형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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