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210>

12장 지체와 문벌을 넘다

형세를 보아하니 왜의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는 꽤 지쳐있었다. 하긴 6월(이하 음력)에 1차전을 치르고, 7월에 2차전, 8월에 3차전, 매월 한 차례씩 전쟁을 치렀으니 지칠 만도 했다. 모두 승리하긴 했지만 병력 손실이 많았고, 무엇보다 병참선이 길어서 식량 보급이 용이하지 못해 군사들이 먹는 것이 부실했다. 그래서 불만들이 쌓이는데, 언제 또 조명군을 대적해야 할지 모르니 성질 급한 왜 군사들은 몹시 짜증이 난 상태였다.

고니시는 그 대안으로 심유경을 불러들여 화평회담을 열고, 전쟁을 종식시려고 하지만 심유경이 북경을 간 석달 사이 조명군은 착실히 전력 증강에 나서고 있다. 정탐병의 정보수집 활동을 통해 확인된 결과, 그것은 더욱 뚜렷해졌다. 군 사기가 떨어지고 전력이 약화되면 필패는 당연한 것, 그래서 정공법 대신 소수 정예군으로 매복전이나 유격전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정충신이 탐지한 정보 결과도 그랬다.

“저놈들은 군사력의 피로증이 누적되니 보병 정공법 대신 필시 유인 정책으로 국면을 모면하려 할 것이오. 병력을 철수하는 척하여 군인들과 첩자들을 속인 후 백성들을 인질로 삼아 일본군이 철수한 것으로 소문을 유포시키고, 쳐들어가면 은폐물을 이용해 응전해올 것이오.”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무당이 이상했다. 묻지도 않은 말을 먼저 꺼내고, 왜의 주둔지를 까발린다. 무당이 밀고한 왜의 기지는 주변에 없었다.

정충신은 무당 집으로 달려갔다. 조지면 무언가 나올 것이다. 마침 무당은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년, 어딜 도망가려고 법석 부리나? 거짓을 말하고도 살 것 같으냐? 무당년이 하는 짓이 괴이하군.”

“에그머니나, 나는 그런 여자 아니에요. 내가 아는대로 가르쳐주었을 뿐인뎁쇼.”

여자가 뒤로 발라당 나가떨어지면서 허겁지겁 변명했다.

“닥쳐라. 나라 팔아먹는 년, 바른대로 대지 않으면 주둥이를 찢을 것이다.”

호통을 치면서 무당을 마당으로 끌어냈다. 병사들이 달려들어 여자의 팔을 비틀고 실제로 입을 찢으려 하자 무당이 소리쳤다.

“사실대로 고백하겠나이다. 살려주세요. 밤이면 그자들이 찾아옵니다. 목숨 부지하려면 어찌할 수가 없었나이다.”

“니 나이 몇이냐?”

“서른 일곱입네다.”

“어린 것도 아닌 년이 천지분간을 못해?”

“아이구 잘못했습니다요. 천한 것이라 목숨 부지하는 것밖에 생각이 없었나이다.”

정충신은 무당을 첩보원을 시켜 산속 은신처로 보내고, 무당의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신당 안에는 꽤 많은 동전과 지전이 있었다. 한 병사가 뱉어냈다.

“돈맛, 몸맛을 아는 여자라서 돈을 꽤 모았습니다. 왜놈 돈도 꽤 되누마요.”

“그것 잘 되었다. 모두 수습하여라.”

정탐병이 동전과 지전을 자루에 쓸어담았다.

한편 평양성을 점령중인 고니시 유키나가 역시 척후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었다. 1,2,3차전을 모두 승리로 이끈 뒤 주민들을 확실히 장악해 여론전을 펴는 동시에 그들을 정보원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왜군의 말을 듣지 않으면 가족을 위해한다고 위협하며, 상당수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아 끌고 갔다. 열여섯 무당 딸년도 그중 하나였다. 무당은 딸년의 안녕을 위해 별 짓을 다하고 있었다.

고니시 군대는 조명 연합군이 다시 평양성을 공격한다는 첩보를 접하고 황해도 봉산에 주둔한 오토모 요시무네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 첩보를 오날쇠가 물어왔다. 왜군에 편입돼 활동중인 조선인 간자를 닦달한 결과 얻어낸 첩보사항이었다. 이들을 어떻게든 저지해야 한다. 고니시 부대를 고립시키는 것이 전세를 역전시키는 전술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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