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희 스피치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의 남도일보 ‘월요아침’
사랑의 관점(觀點)
나선희(나선희스피치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나선희 대표

가을 속을 헤집고 다니겠노라며 자전거를 구입했다. 노랗고 빨갛게 물든 가로수 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광경을 얼마나 오래 전부터 상상만 했던가. 드디어 상상을 현실로! 남평 은행나무 길을 가기로 했다. 일정이 빠듯한 날이었지만 시간 조절을 해가며 현장에 도착했다. 단풍 절정기라선지 평일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파를 뚫고 목표지점을 향해 자전거를 끌고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도 가도 흐드러진 은행나무는 없고 휑해진 나무들만 즐비한 거다. 은행나무 길이 통째로 들려 딴 곳으로 옮겨가진 않았을 텐데, 이거 좀 불안하다 싶었는데....... 하루 새에 다 떨어져버린 거다.

노랗게 물든 가로수를 배경으로 사진도 남길 계획이었는데 무척 실망스러웠다. 나는 속상한 마음을 앙상한 은행나무를 향해 퍼붓기 시작했다. 내가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얼마나 어렵게 시간 낸 줄 아냐, 자전거까지 끌고 온 나다, 그런데 허락도 없이 이파리를 털어냈냐며 혼쭐을 냈다. 한참을 해대다 내 꼴이 우스꽝스러워 웃음이 절로 났다. ‘에라, 단풍 대신 낙엽으로 가지 뭐.’ 이내 단풍놀이를 낙엽놀이로 바꿔버렸다. 관점을 바꾸고 나니 노란 카펫을 깔아 논 듯 한 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데 황홀하기 그지없다. 시선을 나무에서 땅으로 이동시켜 관점을 바꾸고 나니 가을날의 동화 한편을 남기게 되었다.

낙엽은 다시 가지에 매달릴 수 없다. 단풍놀이 허탕이라고 화를 낸들 나무 입장에서 해결해 줄 수 없다. 계속 성을 내는 사람만 손해다.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어머니의 빈 젖을 빠는 것과 마찬가지다. 젖이 있는데 안주는 것이 아니다. 젖이 없다. 단풍이 떨어지고 없다. 음식 솜씨가 없다. 붙임성이 없다. 공부 재능이 없다. 의도적으로 안하는 게 아니라 없어서 못하는 거다. 그런대도 빈 젖을 빨아대며 앙앙대면 분란만 생긴다. 이런 경우 있는 그대로를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시니어 세대를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 교육생 거의 다정하고 편한 분들이었는데 신경 쓰이는 어르신이 한분 있었다. 인사도 안 받고, 눈길조차 주지 않아 기분을 상하게 했다. 수업을 마치고 서로 인사를 나눌 때도 유독 쌩하니 나가버렸다. 고위직 공무원으로 퇴직하시고, 자제분도 다들 잘되셨다더니 교만하시구나 싶었다. 그러던 중 발표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한 쪽 눈을 실명하셨고 나머지 한쪽도 약시라는 거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하게 되고, 운전을 못하니 아내가 픽업을 한다는 거다. 평생 남편을 위해 봉사하는 아내를 기다리게 할 수 없으니 황급히 나갈 수밖에 없다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이 말을 듣고 나니 금세 서운함이 사라지고 오히려 측은지심이 생겨났다.

갈등이 생겼을 때 문제 자체에 집착하면 갈등이 더 깊어진다. ‘눈도 안 맞추다니 나를 무시하네?’, ‘저렇게 서둘러 나가는 건 뭐람? 여기 있는 사람들과는 상종하기 싫다는 건가?’ 이런 식으로 갈등을 키우고 만다. 이럴 때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해결’에 집중해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해결’에 집중하려면 우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눈을 안 맞추시는구나’, ‘끝나면 일찍 서두르시는구나’ 이러면 된다. 엄밀히 따지면 그 어르신이 반드시 나와 눈을 맞추어야만 하는가? 끝나면 반드시 인사를 나누어야만 하는가? 상대는 내가 기대하는 대로 해줄 이유는 없다. 상대가 나의 기대를 채워주지 않아 갈등이 생긴다하더라도 이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자신의 문제다.

이 일이 있은 후 장례미사에 참례할 때의 일이다.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 긴 시간 서 있어야 했다. 시간이 흐르자 슬슬 다리가 아파왔다. 겨우 참고 있는데 옆 사람 때문에 집중이 안 되는 거다. 연신 부스럭대며 손으로 이마와 뒷목, 손등 등을 옮겨가며 닦아대는데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실내가 더운 것도 아니었지만, 혹여 더워서 땀을 흘리나 흘깃 살펴보았는데 그도 아니었다. 애도 아닌 어른이 왜 이렇게 산만한가 싶어 눈치를 줘야하나 싶었을 때 시력을 잃으신 어르신이 떠올랐다. ‘맞아, 이 사람도 틱 장애를 가졌을지도 모르잖아? 아니면 남모를 사정이 있겠지’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산만함을 수용했더니 놀랍게도 미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미사에 집중하지 못한 ‘문제’는 산만한 옆 사람이 원인이 아니라 오래 서있느라 예민해진 나였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은 사랑의 관점이다. 사랑의 관점으로 상대를 보면 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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