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211>
12장 지체와 문벌을 넘다

그날 밤, 정충신은 무당의 집으로 들어가 무당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만약을 대비해 말들은 은신처에 숨겨두었다. 집 주변에는 척후병 넷을 매복시켰다.

“꼭 이렇게 해야 되겠습니까. 숲에서 처치해도 될 것 같은데요?” 오날쇠가 말했다.

“모르는 소리, 생포한다다. 재미보겠다고 안방에 들어은 놈들은 무장을 풀겠지. 이때 쥐도새도 모르게 덮치는 것이다. 어떻게든 생포해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적정 탐지 아닌가.”

그는 경기도 성환 골짜기에서 아주머니를 덮치던 왜군 조무라기들을 이런 식으로 골로 보낸 적이 있다. 전술이란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것도 있지만, 잘 통용되는 것을 재사용하는 것도 유용한 방법이다. 잘되는 것은 장기가 된다. 정충신은 오날쇠를 배치하고 안방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밤이 깊자 좁은 산길을 타고 왜군 세 명이 노닥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야, 이번엔 내가 먼저 할 거야.”아니지, 나이 순으로 해야 공평하지.“

“그럼 떼씹으로 하지.”

“고건 여인네 의사를 물어봐야지.”

“의사는 무슨? 우리 꼴리는대로 하는 거지, 하하하.”

“무당 딸년을 중군장이 차지하니 기분 나쁘더라. 괜히 잡아다 주었어. 돼지잡아 잔치 벌여준 격이야.”

“그래도 우린 택도 없다. 내일 밤은 초소장이 차지한다는데?”

“하여간에 웃대가리들 밝히기는...”

“그럼 들어가는 순서는 연령순으로 정했다. 어린놈부터 들어가라. 내가 양보한다.”

그들은 자기 세상이나 만난 듯이 씨부렁거리며 왁자하게 웃고 떠들며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마치 이웃 나들이 가는 건달들 같았다. 그나마 한 놈은 호로병을 하늘로 치켜들어 술을 꼴깍꼴깍 들이키며 내려오고 있었다.

“상놈에 새끼들, 창피한 줄도 모르는 새끼들, 너그들 다 디졌다.”

정충신이 귀 기울이던 것을 멈추고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맨먼저 들어온 놈이 최연소자라고 했다. 아닌 게아니라 어린놈답게 그자가 방에 들어오자 마자 두말없이 옷을 훌러덩 벗더니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정충신이 단박에 단검으로 그의 배를 쑤셔박았다. 물주머니처럼 그의 배가 꿀렁하더니 움푹 패였다. 피를 쿨쿨 쏟으며 늘어진 놈을 부엌문을 통해 부엌 바닥으로 밀어냈다. 한참만에 다른 놈이 씨부렁거리며 방으로 들어왔다.

“왜 안나오는겨. 시간없는데, 떼씹하자는겨?”

이불 속에서 정충신이 요염한 소리를 내자 그도 옷을 벗더니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번에는 방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던 오날쇠가 달려들어 재빨리 장검으로 왜놈 가슴팍을 찔렀다. 얼마나 힘을 주었던지 칼 끝이 왜군 등으로 빠져나왔다. 오날쇠가 쇠스랑으로 거름 쳐내듯이 그를 부엌 바닥에 집어던졌다. 그는 힘이 장사였다. 이제 한 놈이 남았다. 그자가 방안으로 들어서기가 바쁘게 오날쇠와 정충신이 동시에 달려들어 그의 양손을 비틀고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제는 아무도 없으니 그를 함부로 대적해도 되는 것이다.

“바가! 와 이러나!”

왜군 병사가 소리질렀으나 정충신이 낮고 빠르게 말했다.

“이놈은 생포다. 다치지 않게 해라.”

오날쇠가 포승줄로 능숙하게 왜군 병사를 포박했다. 그들은 병사를 터밭을 지나 뒤켠에 세워진 신당으로 끌고 갔다.

“너의 역할이 무엇이냐.” 정충신이 물었다.

“말할 수 없다.”

그러자 오날쇠가 당장 그의 발을 검으로 내리 찍었다. 발가락 두개가 금방 낚아올린 물고기처럼 바닥에서 파닥거렸다. 오날쇠는 그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발부터 찍어버린 것이다. 왜 병사가 에구구구, 신음소리를 냈지만 아랑곳없이 오날쇠가 소리쳤다.

“쌍놈의 새끼, 파총 말이 말이 아녀? 대답해!”

정충신도 위협했다.

“니가 하나 불지 않으면 몸의 부속 하나씩 날아갈 것이다. 무슨 역할이냐.”

“수비방어사 겸 척후장이다.”

잡고 보니 놈은 중책의 정탐장이었다. 조지면 중요한 정보를 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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