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1장 무장의 길 <215>

이항복은 더 이상 이의를 달지 않았지만 다른 관원들의 시선이 심히 걱정되었다. 편파 인사라고 당장 반발할 것이다. 그러면 그가 맨먼저 용의선상에 오를 것이다. 사저에 데려다 놓고 무과 급제시키자마자 초급행으로 승진을 시켰다... 남이 볼 때는, 정황으로 보아 그렇게 볼만한 근거는 충분했다.

도총부 경력이란 오위도총부에 속한 병무행정 실무를 관장하는 벼슬이다. 도사(都事), 서리(書吏), 사령(使令)보다 위에 있는 자리다. 오위도총부의 도총관·부총관은 부마(駙馬)를 비롯한 종실의 척신들이 임명되는 것이 관례여서 군정(軍政)의 군림 등으로 말이 많았는데,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왕실의 빽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여기에 정충신이 임명된 데다 선전관까지 겸했으니 벼락 출세를 한 것이다. 선전관은 형명(병사의 좌립과 진퇴를 호령하는 역할), 임금의 호위, 왕명 전달 등의 일을 관장하는 왕실 측근 호위대다.

인사발령이 나자 아닌게 아니라 당장 관원들 사이에 난리가 났다.

“전라도 촌놈의 새끼가 어린 나이에 도총부 경력에 선전관까지 올라? 개족같은 나랄세.”

관원들은 이렇게 나라까지 싸잡아 욕했고, 다른 관원은 더욱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전라도 광주 관아의 신분낮은 지인이란 새끼가 이렇게 오이꼬시하면 우리가 좆돼버린 거여.”

“그려. 그 새끼 아래에 금테두른 누이가 있나? 여자 좋아하는 신료들에게 상납하고 출세한 것 아니야?”

왕의 전지(傳旨)가 별도로 내리자 설마했던 선전관들도 가만 있지 않았다.

“이항복 병판의 총애를 받더니 출세가 광속도로 나가는군. 나도 왕실 척신의 줄을 잡거나 누이를 갖다 바치겠다.”

“우리가 이곳까지 임금님을 모시고 왔는데 호종공신은 정충신이 독차지하네. 평양 갔다 오면 선무공신까지 되겠군?”

호종공신은 난리 속에 임금을 호위한 공으로 공신이 되는 경우이고, 선무공신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공신이 되는 경우다. 정충신을 가지고 조정에서도 마침내 투기하며 파가 둘로 갈렸다. 이항복 병조판서와 가까운 신료들은 이항복 편에 서고, 가깝지 않은 자들은 가혹한 비판 대오에 섰다. 시일이 지나자 이항복 편에 선 사람들도 점차 줄어들더니 돌아서고 있었다. 불의에 눈감지 않는 지체있는 균형자처럼 신료들은 처신하고 있었다.

“더 지저분한 새끼들이 난리법석이군. 난들 어떡하라고.”

임금이 명을 내렸는데 자신이 바가지로 욕을 먹는 것이 이항복은 억울하고 분했다. 그도 이런 꼴 나리라고 예상하고 말리지 않았던가.

“남 잘되는 꼴 못보는 자들이 이렇게 많은데 상감마마는 그것도 모르고 자기 감정에 충실하니, 내가 못해먹겠어.”

어느날 행수(行首) 선전관이 다른 선전관들의 의견을 모아 임금을 아뢰었다.“

“상감마마, 지금 나라가 큰 불행을 당해 상감마마께옵서 이렇게 왜놈들에게 쫓겨 천리 이역 의주까지 왔나이다. 상감마마를 모셔오는 데 저희 선전관 또한 발이 피투성이가 되고, 주린 배를 움켜쥐며 사력을 다하여 왕실 살림을 옮겼나이다.”

“그거야 다 그랬던 것이고, 그래 용건이 뭔가...”

빤한 얘기에 빤한 공치사가 선조 임금은 조금 비위가 상했다.“이동 행궁이긴 하지만 그래도 법도와 기강이 있사옵니다. 저기 전라도 광주 목사관의 일개 지인이 의주에 올라와서 병조판서댁 심부름하는데, 그런 지체낮은 자에게 도총부 경력 벼슬과 선전관 벼슬까지 내리시니, 기강을 흩뜨리고 정사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가 심히 사료되옵니다.”

“그래서?”

“선전관 일동은 그러한 직책이 부당하다 하여 상감마마께 정충신의 벼슬 자리를 지워주시는 것이 합당하다고 사료되온 바 찾아뵈었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선조는 화가 났다. 자기들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정충신은 그렇게 자기 일에 충실했다. 그렇다고 치사받기를 원하거나 벼슬을 탐낸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을 보고 어련히 왕이 했을까.

“지체와 문벌을 따지는 것이 기강을 세우는 것이냐? 진실로 기강을 세우려면 실력없는 고루한 자들을 척결해야 하는 것이다. 천리 이역까지 와서도 여전히 문벌·지벌을 따지니 고약한 일이로다. 쓸만한 인재를 찾아서 그에 상응하는 벼슬을 내리는 것은 왕의 특권이다. 그러나 너의 요구대로 정충신에게 도총부 경력 겸 선전관을 내렸던 전지를 거두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신 참상급 선전관으로 승진시키는 바이다. 바로 너희들의 윗 자리다.”

선조의 오기가 발동하면 아무도 못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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