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1장 무장의 길 <217>

“조심들 하시오. 앞으로 내 더 찬찬히 들여다볼 것이오.”

정충신이 이렇게 선전관들 콧대를 꺾어놓자 이정방이 더 놀라고 있었다.

“정 참상, 지금 병판 어른이 부르고 계시네. 어서 병조로 들어가세.”

정충신이 그들을 싸악 한번 눈으로 훑은 뒤 선전관청을 물러났다.

“아따 저 새끼, 성질 한번 고약하네. 우리가 명문가대 출신이란 것도 싹 깔아뭉개버리누만. 하긴 그냥 참상이 되진 않았을 거야. 이럴 때는 우리가 주의하는 수밖에.”

정충신이 사라지자 한 선전관이 혀를 내두르며 확실히 꼬리를 내리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내 일찍이 너에게 웃자라서는 안된다고 했거늘, 어째서 선전관들을 나무랬느냐.”

이항복 대감이 정충신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이정방 일군색으로부터 자초지종 보고를 받은 이항복 대감은 정충신을 병조 별실로 불러들였다.

“내가 무과시험 때 일부러 너를 차석으로 등위를 내린 뜻을 알고 있느냐?”

“알고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

“난세일수록 경거망동하지 말 것이며, 오만하면 안되는 것이며, 속이 꽉찬 벼일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지키고 있느냐?”

“지키려고 해도 지키지 못하도록 상황이 돌아가버립니다.”

“그것을 재빨리 간파하고 이겨내는 것이 대인이 취할 행실이다. 대궐의 문화란 편견과 모함이 가득한 곳인즉, 언제 어느때 모가지가 날아갈지 모른다. 그것으로 기득권을 수백년 째 이어오고 있는 곳 아닌가. 그래서 어떤 경거망동도 용서치 않는 곳이니라. 상감마마의 감정에 따라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느니라. 그래서 나 역시도 어디에 기웃거리지 않고, 초연하게 정사에 임하고 있느니라. 적을 만들어선 안된다. 알겠느냐.”

“알겠사옵니다만, 못참을 때가 있습니다.”

“당연히 못참을 때가 있지. 하지만 너의 인사에 관한 한은 어른스러워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네가 특혜를 받은 것은 사실 아니냐. 모든 관원들이 다들 자기 하는 일보다 직분이 낮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제 승진하나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데 갑자기 나타난 젊은 청년이 별 실적도 없이 행수 선전관보다 윗 자리에 앉아버리니 그들은 그들대로 불만스러운 것이다.”

“별 실적이 없는 건 아닌디요?”

정충신이 똑부러지게 이의를 제기했다. 실적으로 말하자면 장계를 품고 이천오백리길을 단숨에 올라와 임금의 도강을 막는 일이며, 이치전에서 권율 도절제사의 막료로서 승리로 이끌었다.

“그들 눈에는 그렇단 말이다. 다행히도 상감마마께옵서 너의 활동을 아시고 응분의 인사를 내리신 것이니, 그 성은을 뼈에 새겨 보답해야 한다.”

“충실히 따르겠나이다.”

“지금 육조 대신들을 방문해 인사를 하고 오너라. 다시 선전관실도 들려서 화친하는 가운데 정식으로 인사하고 오너라. 그런 다음 상감마마께 거듭 사은숙배(謝恩肅拜)해야 한다. 그렇게 정식 신고식을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임무를 부여하겠다.”

그러면서 이항복 병판 대감이 짐승의 털로 만든 안울립 전립(벙거지)과 등채, 남전대를 내주었다. 군복을 벗고 새 모양을 갖추니 품새가 났다.

“신임 오위도총부 경락 겸 참상 선전관 정충신 인사 올리옵니다.”

정충신이 각 대신들을 만나 인사를 했다. 그들은 속으로 불평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장도를 빈다”고 격려하였다. 그러나 오음 윤두수와 서애 류성룡, 한음 이덕형 등 지체높은 대신들은 정충신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인물이 훤하구나. 역시 백사대감이 인재를 알아봐. 백사는 사람 보는 눈이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니까. 그 점이 내가 부족하단 말이야.”

예판 이덕형의 말이었다.

정충신이 인사를 끝내고 입궁해 선조를 알현하고 숙배했다.

“다시 왔느냐? 예법을 지대로 배웠구나. 헌데 너의 인사를 두고 불평하는 자가 있더냐?”

왕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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