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1장 무장의 길 <220>

“깊은 산에서 짐승을 잡아서 먹고 사는 중국 사냥꾼들은 ‘이주얼쓩산라오후(一猪二熊三老虎)‘라고 하는데 무슨 뜻인지 아시오?“

정충신이 선전관들을 일렬로 세워서 뒤따르도록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작전 개시를 할 때까지 그들을 일사불란하게 인솔해갈 생각이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산은 험준했고, 눈은 가슴 높이까지 찼다. 쌓인 눈을 헤쳐가느라 벌써 숨이 찼다. 정충신은 헥헥거리는 이들을 어떻게든 사냥에 흥미를 붙여주어야 했다.

“무슨 말이오?”

한 선전관이 물었다.

“첫째가 멧돼지, 둘째가 곰, 셋째가 범이라는 말이오. 사냥의 난이도를 말하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멧돼지 사냥이 제일 어렵고 힘들고, 그 다음이 곰 사냥이고, 세 번째가 호랑이 사냥이란 뜻이오.”

“아니, 호랑이가 아니고 멧돼지 사냥이 제일 어렵다니, 그게 말이라고 하는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왜 그런가.”

“멧돼지는 백두산 산삼을 먹고 사니 힘이 허벌나게 좋소. 게다가 성질 하나는 지랄같이 급하오이다. 겁 없이 저돌적이고 순간의 힘이 엄청나지요. 물불 안가리고 덤벼들면 천하의 호랑이도 옆구리가 받혀서 창사가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당개요. 그 다음이 곰인디, 요것으로 말하면 힘은 멧돼지 서너 배요. 그런디 미련하거든. 호랑이는 천상천하 자기가 최고라는 자만심으로 느긋하게 어슬렁거리지요. 피하지도 않고 인간을 만나면 슬슬 다가오지요. 이럴 때 조총으로 한방 대갈박을 향해 갈기면 고대로 나가떨어지지요. 그런데 인간으로서는 가장 사냥하기 어려운 멧돼지가 호랑이 주식이란 말이오이다.”

“왜 그렇소?”

“멧돼지는 다리가 짧기 땀시 뛰어봐야 벼룩이오. 백년 묵은 백두산 산삼 먹고 성장한 놈이라도 여섯 자, 일곱 자 쌓인 눈밭을 짧은 발로 도망가려면 환장할 일이제. 쌓인 눈한티는 역부족이거든. 이때 호랑이가 나무에서 툭 떨어져서 멧돼지 목을 덥석 문단 말이요. 힘이란 기르기도 어렵지만 제대로 쓰기도 어렵소이다. 최소의 원가로 최대의 효과를 얻어내는 게 호랑이의 멧돼지 사냥법이오. 군사의 전법 또한 그러할 것이오.”

“와, 젊은 사람이 대단하오이다.”

뒤따르는 몰이꾼들이 탄성을 질렀다. 깊숙한 산골에 외딴 집이 있었다. 집앞 눈밭에 피가 선연하게 물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싸리울 밑에도 붉은 핏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잠깐!”

정충신이 걸음을 멈추고 손을 들어 뒤따르는 몰이꾼들의 걸음을 제지했다.

“호랑이가 사람을 물어죽였군!”

한 선전관이 핏자국을 보고 겁먹은 소리를 했다. 보아하니 호랑이가 외딴집 가족을 해친 것이 분명해보였다. 호랑이 한 마리가 싸리나무 삽작문에서 나와 눈밭을 어슬렁거렸다. 그의 입주둥이는 온통 피가 얼룩져 있었다. 삽작문 안쪽에는 다른 호랑이 한마리가 눈밭에 엎드려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그놈도 입주둥이가 새빨간 것으로 보아 인간을 배불리 먹고 잠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놈들이 집 주변에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인간을 해친 것은 분명해보였다.

정충신이 몰이꾼들을 골짜기 이쪽 저쪽에 매복시키고, 싸립문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호랑이 머리에 조총의 가늠쇠를 올리고 숨을 멈춘 채 탕 쏘았다. 정통으로 머리를 맞았는지 호랑이가 어흥 하고 포효하면서 허공으로 뛰어오르더니 그대로 고꾸라졌다. 늘어지게 자던 호랑이가 총소리에 놀라 후다닥 뛰는데, 정충신이 벼락같이 외쳤다.

“쏘아라!”

그러나 호랑이가 한발 앞섰다. 호랑이가 구렁창에 배치된 한 선전관 허벅지를 물고 으르렁거렸다. 선전관이 울부짖었다.

“아이고, 사람 살려! 나 죽는다!”

호랑이는 스스로 놀란 데다 성질이 났던지 쓰러진 선전관 허벅지를 물고 꼼짝없이 버티고 앉아있었다.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물고 있을 모양이었다.

정충신이 활을 뽑아들었다. 사람이 다칠 수 있으니 총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선전관을 물고 있던 호랑이가 정충신과 눈이 마주쳤다. 노려보는 호랑이 눈은 매서웠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다. 이런 때 시선을 피하면 골로 간다. 정충신도 뚫어져라 호랑이를 노려보며 한발 한발 그 앞으로 다가갔다. 쏘아본 채 활을 힘껏 당겨 호랑이 눈을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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