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1장 무장의 길 <223>

이덕형은 졸지에 평양성 외곽에 진을 친 이여송 제독의 본진 유치장에 쳐박히고 말았다. 옥에는 하극상을 벌인 자, 동료들끼리 싸우다 들어온 자, 무기를 잃어버리고 동료병사 무기를 훔치다 들어온 자들이 우굴거리고 있었다. 짚덤불이 깔린 바닥은 눅눅한 데다 누군가 오줌을 지렸는지 오줌 냄새가 역하게 풍겨나왔지만, 그들은 그 속에서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명색이 존경받는 명신(名臣)이 이들과 함께 갇히니 이덕형은 체면이 아니었다. 바지 꼴마리를 까 이를 잡아 손톱으로 톡톡 까죽이는 늙은 병사가 그를 바라보며 너도 별 수 없어, 하는 듯이 히죽히죽 웃을 때는 저도 모르게 으스스 전율이 왔다. 그는 이항복에 대한 배신감으로 울화가 치밀었다. 장난도 분수가 있지, 이 새끼, 나가기만 해봐라. 그는 정말 가만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이덕형은 평양에 와있는 류성룡과 이일, 김명원을 만나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 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정월의 유치장은 유독 추위가 맹위를 떨쳤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로 온 몸이 얼어붙었다. 덜덜덜 떨고 있는데 명군 병사들은 강아지 새끼들처럼 서로 몸을 밀착시켜 체온을 유지하며 노닥거렸다. 꾀죄죄한 현실도 낙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 태평이 부러워 그도 그들에게 섞여 몸을 밀착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사대부 신분이 그럴 수는 없었다. 높은 지체가 이렇게 거추장스러운 넝마 같은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인생 별 게 아닌데, 벼슬자리 하나 때문에 왜 그리 서로 도끼눈으로 노려보며 살았던가. 그는 달관한 사람처럼 몸을 웅크리고 목을 깊숙이 박은 채 눈을 감았다. 그러자 스르르 잠이 왔다. 잠이 들면 죽는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긴 칼을 찬 형졸이 옥 앞을 왔다갔다 하며 그가 숨을 쉬나 안쉬나를 살피고 있었다.

잠시 후 심문관이 들어와 이덕형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왜 여기 들어왔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오. 나도 모르겠소.”

“당신 죄를 당신이 모르다니, 그것이 문제란 말이오. 도대체 당신들 생각이 뭐요?”

“나도 잘 모르겠소.”

“우리가 조선을 위해 3만 병력을 이끌고 왔으면 병사들 입성은 제대로 해주어야 할 것 아니오? 추울 때는 뱃속이 비면 더 사지가 오그라든단 말이오. 그런데 하루이틀씩 굶으니 출진이 되겠소?”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낙상지 참장이나 갈봉하 유격을 만날 수 있겠소?”

“그건 왜 묻소?”

“얼마 전 의주 의순관에서 두 장수를 만난 적이 있소이다. 사대수 총병과 자리를 같이하면서 예를 행하고 군병의 사기를 높일 일을 상의한 바가 있습니다.”

“상의한 것이 이 모양이오? 진중에 있는 장수들이 더 화가 나있소. 식량이 올 때까지 묶어둘 수밖에 없다는 명령이오.”

이여송 제독이 군사 3만을 이끌고 부총병 양원을 중협대장(中協大將)으로, 부총병 이여백을 좌익대장으로, 부총병 장세작을 우익대장으로 삼고, 부총병 임자강·조승훈·손수염·사대수와 참장(參將) 이여매·이여호·방시춘·양소선·이방춘·낙상지·갈봉하·동양중과 함께 평양 외곽에 진을 친 것은 1593년 1월11일이었다. 오는 도중 새해맞이 떡국도 제대로 먹지 못한데다 식량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병사들이 쫄쫄 굶었다. 그러니 약탈이 자행되었고, 지휘부는 방치했다. 도가 지나친 것도 묵인되었다.

“솔직히 우리 명군도 질서가 안잡혔지만 조선은 나라라고 할 것이 없소. 주민을 괴롭힌다 하여 의병들이 명군을 공격하는 사례도 접수되고 있소. 전선이 이 모양이니 누가 적이고, 누가 우군이오?”

그래서 병조판서가 평양 외곽 역원에 와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여송의 명령에 따라 척후병들이 병조판서를 잡아온 것이라고 했다.

“자, 갑시다. 이 제독 앞으로 가서 사실대로 고변하시오.”

이덕형이 이여송 제독에게 압송되어 갔다.

“아니, 이 자가 이항복이라고?”

이덕형의 위아래를 훑어본 이여송이 놀란 눈으로 압송대장에게 물었다. 두세 번 이항복을 만나본 이여송은 단박에 그가 가짜임을 알았다.

“이 자는 이항복이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조선의 병판이 역원에 당도했다는 첩보를 받고 잡아들인 것이옵니다.”

“아니다. 당장 이항복을 잡아들이라!”

그때 긴 우마차 행렬이 진지로 들어오고 있었다. 우마차에는 양곡이 가득 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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