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재미와 감동을 안겨준 연극 ‘소’
亞문화전당, 첫 창작극 관객들 호평
‘무겁고 뻔한’주제 해학적으로 구성
연출가 역사의식·배우들 힘 느껴져

연극 ‘소’ 포스터 이미지.

마주보는 객석을 사이에 두고 길게 늘어선 무대. 중앙 쪽이 가장 낮고 좌우로 45도 안팎의 오르막 경사가 이어진다. 양쪽 오르막의 끝은 반대편을 향해 높이 솟아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1 무대에 선 연극 ‘소’는 등장인물들이 겪게 될 갈등과, 슬픔과 대립을 암시하는 무대 장치를 먼저 드러내 보이면서 시작한다. 이어 한쪽 무대 가장 높은 곳에서 북한군 장교복을 입은 인물이 전화기를 들고 남한 쪽 파트너를 향해 ‘5년 전 홍수로 떠내려간 소를 찾아 달라’고 요청한다. 명령조에 가까운 요청은 소 한 마리를 놓고 남북이 대립하는 갈등을 예고한다.

연극 ‘소’는 아시아문화전당이 2016년부터 진행됐던 ACC 레퍼토리 개발 사업의 최종 선정작이다. 레퍼토리개발사업은 국내 최대의 가변형 블랙박스 공연장인 ACC 예술극장 극장1의 특화된 극장 구조를 활용, 세계 에 내놓을 글로벌 콘텐츠를 개발하고자 기획된 3개년 사업이다. 2016년 1차 서류 심사와 2017년 2차 쇼케이스 심사 및 3차 시범공연의 평가 과정을 거쳐 지난달 30일과 12월 1일 이틀에 걸쳐 공연했다.

‘소’는 1996년 중부지방 대홍수로 북한에서 소 한 마리가 한강 하류로 떠내려 온 실제 사건을 코믹하게 풀어낸 공연이다. 홍수로 떠내려 온 ‘소(왕소)’는 오래전 독립군이 해방 후에 집집마다 소 한 마리씩을 갖게 하려고 비밀리에 기른 ‘소’였다는 사실이 남북 고위급 회담, 군사작전, 국제 사법 재판 등을 거쳐 흥미진진하게 드러난다. 농가의 소 한 마리로 인해 발생하는 한반도의 정치, 군사, 외교 상황과 우리 시대의 분단 문제를 ‘코믹우화극’으로 풀어낸다.

관객 박이헌(조선대)씨가 평한 것처럼 ‘주제는 무겁고, 스토리는 뻔 하지만 재미있다’. 러닝타임 110분이 전혀 지루하지 않는다. 메시지와 감동까지 있다. 연출의 힘이 느껴진다.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들을 속도감 있게 보여준다. 특히 60년 만에 세상 빛을 본 우섭을 통해 일본 패망과 6·25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를 빠르게 조망하고, 중간 중간에 절제된 유머와 해학을 재치 있게 구성해 무겁고 딱딱한 주제를 부드럽게 만든다. “관객들이 분단의 현실을 되돌아보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초점을 맞췄다”는 민준호 연출가의 역사의식과 공감 정신이 엿보인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22명 출연자 중 주역은 물론 조역 모두가 하나같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묵직하게 표출하면서도 코믹하게 풀어낸다.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자유와 통일의 의지를 드러내는 우섭 역 김동곤의 연기는 불을 뿜는다. 남북한이 ‘왕소’의 소유를 놓고 날카롭게 맞서자 “우리는 아직 독립이 안됐어”, “왕소는 남쪽의 것도 아니고, 북쪽의 것도 아닌 우리의 소”라고 절규하는 장면에선 뭉클해진다. 또 우섭 아버지와 독립군의 대화에서 나오는 ‘나와바리’나 ‘쪽바리’, ‘니빠이’ 등 일본말은 ‘독립’과는 배치되지만 재미를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번에 첫 선을 보인 연극 ‘소’는 초연임에도 이틀 연속 370석에 이르는 객석을 모두 채울만큼 주목받았다. 그리고 많은 관객들은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연극’ 평가를 내렸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객석이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반응도 나왔다. 아시아문화전당이 3년간 야심차게 준비한 창작 연극이 첫 발을 순조롭게 내디딘 셈이다. ‘소’가 당초 목표한 글로벌 문화 콘텐츠로 도약하기 위해선 가야할 길은 멀다. 우리 정서에 익숙한 ‘소’와 ‘분단’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공유하기는 쉽지 않다. 광주에서 탄생한‘소’가 향유자를 넓혀가고, 세계 무대서도 인정받는 연극이 됐으면 한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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