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의 단상, 두 가지 풍경
정준호(법무법인 평우 대표변호사)
 

일정이 여유로운 날에 가끔 일부러 시내버스를 탄다. 시내버스 안에서는 도시의 삶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내버스의 풍경은 이 도시 구성원의 한사람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곧 내 삶의 단면을 확인하는 거울이기 되어주기도 하는 것 같다.

며칠 전 시내버스를 탔다가 내가 광주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면서 이용했던 시내버스의 풍경과 비교해 본적이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버스 안에서 연로하신 어르신들이나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 또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버스에 오르면 너무나 당연하게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던 기억이 오래된 박물관의 유물처럼 느껴졌다. 며칠 전 이용한 버스 안에서는 어르신들이 올라와도 젊은 사람들 대부분이 손에 든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이 돌아가게 하는 가치와 규범이 달라져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싶었다.

그러나 일상의 가치와 규범이 달라진다고 해도 바뀌지 않아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존엄은 자신의 권리만을 앞세워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나눔과 배려가 오히려 그 존엄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광주는 특별한 공동체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생명조차 함께 나누었던 5.18역사의 공동체 경험이 그것이다. 그래서 광주의 도시정체성은 어느 시점부터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로 자리매김 되어 왔다. 인권의 도시라는 점에서 광주의 시내버스 풍경은 조금은 달라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은 너무 진부하고 무리한 것일까? 나보다 더 불편하고 어려운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덜어줄 수 있는 노력이 시민들의 일상에서 확인되는 도시, 어쩌면 ‘광주다움’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효제(孝悌)의 정신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현재도 반드시 필요하고 작용해야 할 사회적 규범이자 가치가 되어야 한다. 웃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배려하는 문화야말로 공동체의 질서를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내버스 안에서 볼 수 있었던 또 하나의 풍경은 자신도 적지 않은 연세임에도 자신보다 더 나이든 어르신이 버스에 오르자 학생들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이분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권유하는 모습이었다. 어른이라는 권위로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넌지시 일깨워주는 힘이었다. 길을 지나다 보면 청소년들의 일탈을 가끔 목격하게 된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마음 불편한 모습과 대면하는 경우마다 나서야 할지 그냥 지나쳐야 할지 갈등한 적이 여러 번 있다. 그 갈등에 대한 자책이 되살아났다. 세상의 풍파를 온몸으로 겪어 오신 어르신들의 삶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박물관이라고 한다. 그래서 독일의 경우 나이 들어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살아 온 경험과 평생 해 온 일에 대한 내용을 리포트로 제출하면 입학이 허용된다고 한다. 이 시대의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녹록지 않은 것은 속도와 결과만을 중시하는 압축적 경제체제에 길들여져 있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살필 겨를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어른이 어른으로서 역할을 주저하지 않을 때, 그것도 자신의 삶의 경륜에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지혜로 어른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 할 때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이 시대의 젊은 친구들에게 작은 변화라도 주는 것은 아닐까.

인권의 도시 광주! 외지에서 찾아 온 사람들이 광주에서 처음 발견하는 ‘광주다움’이 시내버스의 두 상반된 풍경이 아니라 젊은 친구들과 어르신들이 서로 배려하는 시내버스 풍경이기를 희망해본다. 요즘 학교폭력이 단순히 청소년들 일탈의 정도를 넘어 사회적 충격을 주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어르신들은 밥상머리 교육을 강조한다. 인성교육에 관한 기본법도 제정된 지 몇 해가 지났다. 그럼에도 이런 일들이 되풀이되거나 더 끔찍해져 가는 것은 어쩌면 어른들의 책임이 더 큰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인성은 하루아침의 계기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의 일상적 삶의 영향으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