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1장 무장의 길 <227>

정충신이 평양성 외곽에 진을 치고 있는 조선군 본진으로 달려갔다. 류성룡과 이일, 그리고 김명원이 마침 대책회의를 열고 있었다.

“선전관청 참상관 정충신 아뢰옵니다.”

“그래, 수고했네. 귀관이 선전관청의 허참례를 깨끗이 일소했다니 구태를 일소한 것이다. 그리고 명군 제독 이여송 장군을 상대로 이항복 병판과 함께 호궤를 호쾌하게 해결했다는 소식을 들었네. 일만 병사의 일을 귀관이 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능히 한 역할했은즉, 귀관의 지혜를 높이 치하하는 바이다. 그런데 여기 온 용건이 무엇인가.”

류성룡이었다. 그는 전란 초기 판단을 잘못하였다 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간관(諫官)들의 탄핵으로 이산해와 함께 파직되었다가 얼마 전 복직되어 지금은 도체찰사가 되어(오늘날로 치면 총사령관격·당시 옥상옥의 무장 직책이 남발되었다) 조선의 군사를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다.

정충신이 각지게 허리를 구부린 다음 우뚝 서서 말했다.

“지금 왜 군사들이 평양성을 일본성으로 개축해 최대한 요새화하고, 모란봉에는 2천의 조총부대를 배치시키고, 평양 외성과 칠성문, 보통문 요소요소에는 정예 왜병들을 매복시켰사옵니다. 그러는 한편으로 고니시 유키나가 1번 대장이 역원인 부산원으로 가서 중국 사절 심유경을 만난다는 첩보를 확인하였나이다.”

“그것이 사실이렸다?”

이번에는 김명원이었다. 팔도도원수 김명원이 임진강에서 패퇴하고, 평양마저 함락된 뒤 꾀죄죄한 모습으로 순안의 행재소로 왔을 때 정충신은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징벌 대신 다시 군사를 규합해 설욕전을 치르기 위해 명군과 함께 평양성에 와있었다.

“사실입니다. 첩보사항의 제보자를 말씀드리지 못한 점 이해하십시오. 또다른 밀지를 제보받아야 하기 때문에 제보자를 철저히 보호해야 하옵니다.”

평안도 병마절도사 이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 그 부분은 생략하는데, 김명원이 물었다.

“그렇다면 젊은 군관이 지략을 가지고 왔는가?”

“가지고 왔사옵니다. 왜군들이 1급 비밀인 방어 계획을 흘리고 있는 이상, 그것을 우리 군사가 역으로 치면 될 것이옵니다. 저들은 아군이 치고 들어갈 것으로 알고 평양성과 외성, 칠성문, 보통문 요소요소에 정예 왜병들을 매복시키고 있습니다. 이때 정면 공격은 명군이 공격하도록 하고, 우리 조선군은 후방을 치는 것입니다.

이일 병마절도사가 물었다.

“왜 정면 공격을 회피하려 하는가.”

“평양 지리에 약한 명군이 정면에서 치되, 우리 조선군은 미로를 돌아 그들 후방을 치는 것입니다. 지리(地利)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우리 군사력을 아끼고 전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정면 공격은 아군의 희생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피를 덜 흘려야 피를 더 비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당연한 말이지.”

다시금 군 수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류성룡이 물었다.

“귀관의 위치 설정은 어떻게 하려는가.”

“소관(小官)은 정탐병과 척후병을 인솔해 고니시를 생포하려고 합니다. 심수경 칙사가 모레 부산원에 당도한다고 하는 바, 그때 고니시를 때려 잡으려고 합니다.”

“심유경은 믿을 만한 위인인가. 정식 관료 출신도 아니고, 장수도 아니잖은가. 정규군이 아니라는 뜻에서 유격장군이라고 하지 않나.”

“그래도 명의 병부상서 석성의 신임을 받는 자입니다.”

심유경은 석성이 왜군의 동태를 정탐하라고 파견한 일종의 개인 특사인데, 그는 조선을 두 토막 낸다는 등 터무니없는 협상으로 조선의 국기(國基)를 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요양 부총병 조승훈 부대와 함께 조선에 온 데다 석성의 서찰을 니녔기에 사기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심유경은 중국의 남방병사들을 모아온 데다, 왜의 조공 창구였던 닝뽀에서 일본놈을 상대로 건달생활을 해온 관계로 왜말이 능통한 자였다. 그래서 손쉽게 고니시와 통접(通接)한 사이가 되었다. 그런 처지를 이용하면 또다른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심유경이 평양에 온다는 소식은 사실은 이여송 첩보부대가 짠 음모였다. 이여송은 심유경이 명 황제 만력제로부터 허락을 받아 회담을 하자고 한 것처럼 속여 평양성 근처에 있는 역원으로 오는 것으로 하고, 고니시를 유인하여 생포할 계략을 세우고 있었다.

고니시는 군량과 군마 부족 상황에서 어떻게든 전쟁을 끝낼 계획을 추진중이었다. 그래서 이런 제안이 들어오자 덥석 받아 문 것이었다. 이 사실을 무당은 곧이곧대로 흘려듣고 정충신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