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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1장 무장의 길 <228>

의심많은 왜놈답게 고니시 유키나가의 사위 소 요시토시(宗義智)가 고니시를 찾았다.

“부산원으로 나가실 작정입니까?”

“나가야지. 심 유격이 만력제의 서찰을 가지고 역원에 당도했다지 않은가. 드디어 휴전이 성립되는가 보군. 싸우지 않고도 조선반도의 5개 도를 우리가 먹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가.”

“4개도가 아닙니까.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하긴 산악지대인 강원도는 줘도 그만 안줘도 그만이지. 어쨌든 이것을 두고 손 안대고 코 푼다고 한다네.”

“그런데 장인어른, 뭔가 이상합니다. 그가 왔다면 당연히 기찰포교가 우리 진중에 소식을 가지고 와야 하는데 이여송 군대를 통해서 흘러들었다 이겁니다. 이거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 그게 좀 이상하긴 하다. 그렇다면 네가 먼저 선발대로 들어가 살피는 것이 낫겠다.”

왜군의 의심병은 일종의 습관병이었다. 매일 전쟁을 치르다 보니 하룻 밤 사이에 목이 달아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니 잠잘 때도 눈에 겨자 가루를 바르고 잔다고 하지 않던가.

장사꾼이 장수에 오른 것은 눈치로 때려서 이룬 일이니 요코하마 장사꾼 고니시의 눈치를 당할 자가 없었지만, 소 요시토시는 한수 더 떴다. 요시토시는 대마도 당주(종가의 지배자)였다. 그는 대마도주(對馬島主)로서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눈치로 때려 주민을 먹여 살리는 사람이었다. 주민들은 일본 조정보다 조선 조정으로부터 매년 쌀과 콩, 보리와 조를 제공받았다. 섬이 온통 자갈밭인 박토인데다 농토마저 적어서 외지인의 원조를 받아야 먹고 사는 형편인데, 조선은 가장 큰 손이었다. 조선의 눈치를 보고 손을 싹싹 비벼대느라 손금이 없어질 판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조선으로부터 종삼품 벼슬도 받은 사람이었다.

임진왜란이 났을 때 요시토시가 맨 먼저 긴장하고 전쟁을 반대하고 나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일본에서 지원을 해준다면 모르지만 되려 군대징발과 군량미로 건어물 수만 죽을 내놓으라고 하니 못견딜 일이었다. 그런데 장인 고니시가 조선 정벌 1번 대장으로 최선봉에 섰다.

“요시토시를 나의 막료장으로 임명한다. 내 뒤를 따르라.”

장인은 이렇게 하명했다. 그는 하루 아침에 대마도 대대로 내려온 당주 노릇을 때려치우고 무사로 나서게 되었다. 그는 운명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핵심 부하인 고니시의 수하가 된 것이다. 요시토시 정도는 도요토미의 조선 정벌 계획에 발언권 하나 행사할 수 없는 수백의 막료장 중 하나였다. 결국 장인 때문에 조선 정벌에 나섰는데, 다만 그는 태생이 그런지라 화평론자였다.

난세에 조선과 일본 사이에 끼어 줄타기를 하는 것이 못견딜 일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 장인이 구렁창으로 빠져드는 것을 그는 그대로 지켜볼 수 없었다. 분명 거기엔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장인 어른, 제가 먼저 역원에 들어가 심 유격이 당도했으면 지붕 위로 십자가를 들어올릴 테니 그때 들어오시고, 올리지 않으면 틀린 일로 아시오.”

고니시 유키나가는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조선 정벌에 나설만큼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그래서 십자기는 1번대의 상징 깃발이 되었다. 요시토시는 종교가 없었으나 카톨릭 신자인 장인의 영향을 받아 다리오라는 세례명까지 받았다. 훗날 요시토시와 고니시의 딸 마리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고니시 만쇼는 신부가 되었고, 조선조 고종 말기에는 그의 후손이자 대마도 10몇 대 당주인 소 다케유키(宗武志)가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와 결혼해서 조선 왕실과 혼맥을 가진 인연이 있었다.

“화선을 부산원으로 보냈으니 화선을 통해 염탐하거라.”

“화선이라니요?”

“무당이다. 미리 역원에 박아놓았다. 주방에 있을 것이다.”

그는 차마 사위에게 어린 애첩의 어미라고 말하진 않았다. 그가 이 사실을 알고 모르고는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자기 딸을 데리고 사는 사위에게 여자를 가까이한다는 모습을 비치는 것은 아무래도 도리에 맞지 않았다. 그것은 “너 역시 다른 여자를 손대라”는 면허장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노릇이다. 그럴 때 자신의 딸이 겪을 고통을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어서 가봐.”

함정의 가능성은 현실이 되었다. 역원 지붕위로 십자 깃발은 끝내 오르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이여?”

역원 뒤 숲에서 대기하고 있던 정충신은 안에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통 기별이 없었다. 고니시가 들어오면 시종으로 위장한 수색 병졸이 처마 위로 깃발을 올리기로 했다. 그러면 한달음에 들이닥쳐 고니시의 후장을 따버릴 작정이었다. 그런데 오르지 않는다. 파놓은 함정을 미리 알아버렸나? 하여간에 쥐새끼 같은 놈들이여...

만약에 심의경이 부산원에 들어왔다면 왜의 십자기가 오르고, 이때 고니시가 들어왔다면 조선의 군기(軍旗)인 수자기(帥字旗)가 동시에 오를 판이었다. 그런데 두 깃발 모두 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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