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작은 결혼식이다
김성식(조선이공대학교 교수)

지인의 딸 혼인식 주례를 부탁 받고 걱정이 하나 생겼다. 예식장 주변의 교통 혼잡과 바글거리는 피로연장에서 식사할 일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성실하고 예의 바른 신랑신부를 진심으로 축하해주기 위해 1시간 정도 일찍 예식장에 도착했으나 입구에서 50여분을 기다린 끝에 예식 시작 10분 전에서야 겨우 주차할 수 있었다. 50여분을 기다리는 동안 이러다가 주례 없는 혼례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도 안 되는 예식을 치르기 위해 언제까지 이런 복잡한 절차가 되풀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주말에 예식장을 찾은 사람들은 누구나 경험한 일일 것이다.

아마 난민 수용소 같은 예식장 모습은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독일의 어느 사회학자가 서울 명동거리의 인파와 난립된 아파트를 보고 이곳이 한국의 할렘가냐고 물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예식장 인파를 보았다면 한국의 독특한 결혼문화에 대해 어떻게 물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제 우리의 결혼문화도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그 패러다임이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보여주기식의 허례허식을 버리고 혼례 본질의 가치를 찾아가는 결혼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때가 되었다. 몇 해 전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결혼식장은 아주 작은 규모였고 참석한 하객들 역시 양가 친척들과 몇 몇 친구들뿐이어서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연유를 듣고 나니 결혼식의 의미가 참 소중했었다. 신랑신부는 양가 부모님을 설득하여 아주 간소하고 검약하게 결혼식을 치르고 나머지 비용은 자신들의 살림을 장만하는데 보태고 어른들께 인사 올리는 것으로 대신하는 아주 작은 결혼식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나라의 기업체에서도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포스코에서는 2012년부터 7년째 지역별로 예식홀을 제공하고 예식 비품을 지원해 1,063쌍의 신랑신부가 작은 결혼식을 올릴 수 있도록 후원했다. 직원 복지 차원에서 불필요한 절차를 줄이고 꼭 필요한 하객만 초대해 합리적인 비용으로 혼례를 치르도록 하고 있는데, 그룹사 직원뿐만 아니라 협력사 직원이나 자녀들까지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작은 결혼식을 올린 신랑신부들은 스튜디오 촬영을 생략한 비용을 불우시설에 기부하기도 하고, 예식에 사용된 꽃을 호스피스 병동 암환자나 미혼모, 어르신, 보육원 등에 전달하여 기쁨과 행복을 나누어 혼례의 의미가 더 클 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부모님들이 아들과 딸이 일하는 공간을 둘러볼 수 있어 만족도가 무척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청에서 제공하고 있는 숲속 결혼식도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다. 전국 8개 국립자연휴양림에서 접수를 받아 진행하는데, 신랑신부가 모든 계획을 세우고 직접 진행해 나가는 것이 특별하다. 모든 것이 틀에 박혀 정형화된 상업적 혼례보다 자기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숲속 결혼식은 젊은이들 사이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자연 안에서 점촉 대신 화분에 물을 주고 직접 작성한 혼인서약서를 낭독하고, 양측 부모 중 한 분이 성혼을 선언하는 등 자기들의 개성에 맞게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숲속 혼례는 참석한 하객들 모두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혼인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축의금만 내고 밥만 먹고 가는 혼례를 하고 싶지 않다.”는 젊은이들의 추세는 결혼식 관련 업계의 상권을 뿌리 채 흔들리게 하고 있다. 예식장 등 관련 업체의 부진은 수치상으로 극명히 드러난다. 혼인 감소 추세(2015년 30만 2,800쌍→2016년도 28만 1,655쌍)가 이어지면서 지난 한 해 탄생한 부부는 26만 4,455쌍으로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그러다 보니 1,000여개에 달하는‘웨딩 타운’이나 ‘예식 타운’은 이름이 무색할 만큼 속속 문을 닫거나 다른 사업장으로 변경을 꾀하여 2년간 780개가 줄어 25%가 감소한 상황이다.

이제 우리도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을 초대해 레스토랑이나 회관에서 소규모로 진행하는 작은 결혼문화를 적극 생각해 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작지만 혼례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결혼식이 허례에 가득 찬 결혼식보다 훨씬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인식할 때가 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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