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1장 무장의 길 <234>

선조는 한양으로 내려가는 길에 백사 이항복 병판을 불렀다. 선조는 감회가 새로웠다.

“이여송 제독이 거느린 4만명의 명군이 왜적을 물리쳤구나.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이는 명나라 접반사가 되어 이여송 제독의 마음을 산 백사 대감의 공로가 크다.”

“황공하옵니다. 일이 잘 되어서 상감마마께옵서 종묘 사직으로 복귀하시는 것이 광영이옵니다.”

“내가 도성으로 복귀하는 것은 두 번 다시 생각해보아도 명군이 힘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사옵니디.”

“평양성에 들어가서 이 제독을 어떻게 치하할 것인지를 검토하라.”

“알겠사옵니다.”

평양성 격전은 임진왜란의 전황을 바꾸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는 데 임금은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니 승전의 잔치를 열자는 것이다.

“내 친히 평양으로 달려가서 이여송 제독을 치하할 것이다. 평양성 전투에서 혼찌검이 난 왜군은 연이어 퇴각하고 한양마저 버리고 후퇴한다고 하지 않더냐.”

그러나 백사의 생각은 달랐다. 명군의 지원 아래 승리를 이끈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 관군과 의승병, 산하의 포병부대, 궁수부대, 장창부대, 척후병력이 하나가 되어 적을 무찌른 것이다. 순서로 보면 조선군을 위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해보였다.

“상감마마, 그같은 인사는 늦지 않사옵니다. 전하의 옥체가 강건한 상태로 입궐하시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옵니다.”

백사는 에둘러 이렇게 말했다. 조선군부터 공훈을 나누자고 나서면 왕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

“당연히 건강한 몸으로 귀환해야지. 그렇다고 머릿 속으로 공훈자를 생각하는 것도 버리란 말이냐?”

선조는 논상자에 계속 집착하고 있었다. 백사의 생각으로는 조선군에게 먼저 공훈을 나누어야 한다고 여기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세자 저하가 도처에서 왜군을 격파했나이다. 고을마다 세자 저하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옵니다. 물불 안가리고 장수들을 지휘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에게 구휼 양곡을 풀었나이다.”

그러자 왕이 백사를 꼬나보았다. 마땅치 않다는 태도였다.

“양곡을 어디서 나서?”

이항복은 아차, 했으나 정직하게 말했다.

“세곡을 풀었다고 하옵니다.”

“지 멋대로?”

이항복은 왕이 광해를 미워한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잊어버린 것을 후회했다. 그래서 재빨리 말을 돌려 수습했다.

“문신은 물론 장수들 또한 역할을 했나이다.”

“장수들?”

“그렇사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바다에서, 육지에서, 강에서, 바위 틈에서 왜적들을 물리쳤나이다.”

“명군에 비하면 차강표표(差强表表)라니까.”

명군이 으뜸이고, 조선군의 장수들은 약간 나은 편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조선군 장수들은 별 것 아니라고 열외로 치는 인식이다. 선조가 다시 말했다.

“왜군 소굴에서 왜적을 초토화시킨 것은 명군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조선의 장수들은 명군의 뒤를 따르거나 잔적(殘敵)의 몇몇 수급을 베었을 뿐이다. 명이 원군을 보낸 연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바로 명 황제가 과인을 어여삐 여겨 군사를 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국에 먼저은공을 살피는 것이 신하국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그것이 바로 황제 폐하께서 조선의 강토를 다시 찾아주신 재조지은(再造之恩)을 갚는 길이다. 병판은 새겨들으렸다.

왕은 난리가 나자 황급히 의주에 도달하여 연일 기도하듯이 명군의 구원을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져 왜군을 몰아냈다고 여겼다. 선조는 뼛속까지 사대(事大)에 젖어 있었다.

한편 정충신이 낙상지 장군을 만나러 가는 길에 선전관과 군관을 만났다.

“어이, 정 참상관, 개선장군처럼 혼자 재미보려 하지 말고 우리도 좀 봐줘.”

행수 선전관과 차수 선전관, 그리고 중군장 계급장을 단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입궐하면 공신들에게 녹훈을 준다는데 정충신이 그래도 실세 아닌가. 정 참상관은 든든한 명군 빽까지 갖고 있지 않나.”

그러면서 차수 선전관이 품에서 묵직한 금붙이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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