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1장 무장의 길 <235>

“이게 뭐요?”

정충신이 놀라서 물었다. 안면이 있는 김 아무개 차수 선전관이었다. 행수 선전관은 자주 보지 못했지만 차수 선전관은 업무상 종종 얼굴을 부딪쳤다. 중군장 계급장을 단 군관은 낯설었다. 차수 선전관이 은행나무 뒤로 정충신을 이끌었다. 일행은 은행나무 아래 둘러 섰다.

“금 세 냥이야. 이것이면 멸문지화도 막는 힘을 갖고 있지. 한 냥은 병판 대감 마나님에게 올려도 될 것이야. 다리 좀 놓아서 이 자 승진 길 좀 열어주시오. 내 고향 친구요.”

그는 홍주 사람이었다. 군관은 본래 그러는 것인지 싱겁게 웃는 얼뜨기 상이었다. 반면에 차수 선전관은 한양 물을 오래 먹었는지 눈치가 빠르고, 말씨 또한 세련돼보였다.

“내 일찍이 정충신 참상관을 눈여겨보았지. 그래서 이제나 저제나 사적으로 만나볼 요량이었는데, 오늘 보게 되었군. 조정의 문무백관들과 친하게 지내는 정 참상관의 처세술이 늘 부러웠소이다. 우리가 녹을 헛먹었다는 생각을 한다니까. 대신 정 참상관에게 우리가 보험들기로 했소이다.”

“내가 금붙이에 대해 묻고 있잖소?”

정충신이 거듭 묻자 그는 직답을 피하고 소리를 낮춰서 다르게 말했다.

“내가 차수이긴 하지만 사고 한번 친 뒤 영 승진이 안되오이다. 올해 계급 정년에 찼소. 차수라도 실권없는 직책이니 끗발이 안서서 쪽팔린단 말이오.”

이에 군관이 나섰다.

“그래서 나가 군자금을 마련한 거여유. 나는 김판돌인디, 본래는 은퇴한 김 판서 대감의 사복이었슈. 김판서 집안이 난리를 만나 엎어질 때 야사야사해서 면천(免賤)했는디, 어느 결에 별군 졸개가 되었소. 하지만 다들 돈 멕이고 요소요소 영직(榮職)으로 가는 것을 보고 눈이 뒤집어졌슈. 낸두 욕심이 없겠슈? 그래서 야사야사해서 별군관-군관-별무사-초관까지 올랐슈. 하지만 종칠품이나 팔품 가지고는 양이 차덜 안혀.”

그제서야 행수 선전관이 나섰다.

“왕족이라고 날 찾아왔는데, 군 문제는 정 참상관이 직방 아닌가. 백사 병판 대감을 모시고 있는데 그 길이 가장 빠르지, 하하하.”

그도 좀 먹었다는 것을 실토한 셈이었다.

“그렇지. 내 친구라면 최소한 천총, 별장까지 올라야지. 목표는 천총인데, 밑천이 거기까지 닿을지 모르겠다는 것이오.”

“지금 중군장 계급장을 달았잖소.”

“그건 짜가야. 우리와 다닐려면 이 정도 계급장은 달아야지. 어디서 주워서 붙여준 거야.”

완전 개판이었다.

“진영장이나 국별장, 또는 천총만 가면 원이 없겠슈. 기패관을 대동하고 금의환향할 적시면, 김 판서 대감이 내 앞에서 바싹 얼어버릴 거유. 고걸 보고 잡단 말여유. 인간지사 새옹지마닝게 그러지 말란 법도 없쥬. 기왕 면천한 마당에 그자 앞에서 나가 이렇게 출세했다구 떡 보여주구 유세하고 잡단 말여유.”

“전쟁은 이런 기회도 주는 거유.” 차수 행정관이 말하며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금붙이는 어디서 났소.”

정충신이 재차 물었다. 일반 여염집에서 나올 물건이 아니었다.

“고건 묻들 말어유.” 군관이 손을 내저었다.

“패물의 출처를 알아야 내가 받건 안받건 할 거 아니오? 잘못 먹으면 나도 골로 가니까.”

“그렇다면 내 청을 들어주겠다 그 말이유? 그럼 말하갔시다. 나가 대갓집에서 쌔비한 거유.”

“행수 선전관한티는 인사를 했소?”

군관이 물어보나마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히벌쭉 웃었다. 하긴 그렇지 않다면 그가 여기까지 나설 리는 만무한 일이다. 매관매직을 바로잡기 위해 순안(巡按)이나 선전관을 각 고을에 파견하는데 선전관부터가 이렇게 부패해있다. 하긴 돈으로 좌수·별감·풍헌 등 향임과 별장·천총·파총·별무사 등 무임 벼슬을 사서 직에 오르는 풍조였으니 누구를 욕하고 탓할 것도 없었다. 차수 선전관이 세상 초월했다는 듯이 말했다.

“난세일수록 돌고 도는 세상, 재미있게 살자고! 나가 아니면 누군가가 고걸 먹을 것이고, 그 자리도 누군가가 차지한단 말이오. 그럴 때 기왕이면 아는 사람끼리 해먹는 것이 좋들 않겄슈? 그래야 서로다가 비밀이 지켜질테구, 이익도 나누니 좋구 말이유.”

그 말을 듣고 군관이 정충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하는 자리를 연결해주면 먹고 사는 일은 평생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로고만.”

“당신들은 다 디졌어.”

정충신이 버럭 소리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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