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1장 무장의 길 <236>

“왜 그류?”

“왜 그류라긴? 이런 부패 탐악도들을 내 어찌 가만두라는 것인가.”

차수 선전관이 나섰다. 정충신의 호통에 그도 쫄았으나 걸고 넘어지겠다는 기색이 영력했다.

“젊어서 참상관이 됐다고 눈에 뵈는 게 없어? 행수 참상관은 왕의 외척이야. 그리고 너도 받아먹겠다고 하지 않았냐? 그런 함정 수사가 어딨냐?”

“암행어사나 선전관도 그런 함정수사를 한다. 미끼를 넣어서 대어를 잡듯이 말이다. 더 이상 당하지 않으려면 나를 따라오렸다.”

직접 의금부로 끌고 갈 작정이었다. 사헌부는 죄질을 따지는 데 시간이 걸리니 당장 족치는 의금부가 나을 성 싶었다.

“정 참상관, 왜 그류. 좋자고 하는 일인디 일이 요상하게 돌아가부네. 우리는 친하다는 생각으루다 호의 베푼다는 마음으로 정 참상관을 만났던 것인데, 이런 벼락맞을 줄 누가 알았겠슈.”

김판돌 군관은 거의 울상이었다. 그나마 쌓아온 벼슬도 날아갈 판이었다. 행수 참상관이 비실비실 뒷걸음질 쳤다.

“나는 모르는 일이야. 정 참상관, 정말 대쪽 같으이.”

명색이 왕의 외척이란 자가 자기 살겠다고 도망가는 것이 저열하고 비겁해보였다. 정충신은 그에 반발이라도 하듯 생각을 바꿔 먹고 이항복 대감 댁으로 두 사람을 데리고 갔다. 행랑채 앞에 그들을 세워두고 그가 사랑으로 들어갔다. 자초지종을 들은 이항복 대감이 혀를 끌끌 찼다.

“에잇, 못난 놈.”

중벌 죄인을 끌고 온 것이 잘못이란 말인가. 곧바로 의금부로 끌고 가 곤욕을 치르게 하지 않은 것을 탓하는 것인가.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요? 부패 탐악도를 현장범으로 붙잡아왔는데도 잘못했습니까요?”

“그렇다 이놈아. 중죄로 다스릴 놈이 있고, 교화해서 사람 만들 놈이 따로 있느니라. 벌 내리겠다고 유세하는 놈 치고 제대로 된 놈 없어.”

“죄는 죄지, 구분이 있나요?”

“행수란 놈을 잡아와야지.”

“그 자는 상감마마의 외가쪽 세도가 집안 자제인디요?”

“그러니까 잡아와야지. 모두가 그놈 농간이야. 저 자들은 불쌍한 불상놈들일 뿐이야. 그놈을 잡아 족치면, 저것들을 족칠 이유도 없는 것이렸다. 그런 배포도 없단 말인가? 저 홍주에서 왔다는 자는 불쌍한 군인 아닌가. 얼마나 설움 받았길래 돈 먹여서 출세해보려고 안달이겠느냐. 종오품도 아니고 육품도 아닌 칠팔 품 얻겠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이 대감이 어린 시절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대여섯 살 때 일이니라. 한여름 서당 공부는 하기 싫고 매미잡는 일이 더 좋았더니라. 그래서 숲으로 들어가 매미를 잡고 노는데, 훈도부장이란 사람이 나를 잡더니 서당으로 끌고가려고 하는구나. 훈장님한테 혼내주겠다고 말이다. 나는 잘못했노라고 무릎꿇고 두 손 모아 싹싹 빌었지.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그땐 큰 일인 줄 알았지. 그런데 그렇게 빌어도 쓸데없는 일이었어. 기어이 훈장한테 끌고가 목침 위에 발을 딛고 서서 두 손 들고 한나절을 벌로 서있었다. 그래서 어쩐 줄 아느냐?”

“어떻게 됐습니까요?”

“평생 그 자가 보기도 싫더구나. 내가 지위가 높아져서 승진시켜달라고 부탁하는 걸 발로 차버렸다. 지방으로 쫓아버렸지. 인본이 없는 놈은 애초에 내쳐야 했지.”

“남이 보면 보복이라고 할텐디요?”

“그런 보복은 백번 해도 싸다. 더군다나 그것을 동네방네 다 소문냈으니 말이다. 어린 것에게도 체면이 있는데 말이다. 그 나이 어린 것이 매미잡는 일은 어린이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저 시골에서 올라온 순박한 사람들은 남이 하니 따라서 하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교화시킬만한 자들이다. 그렇게 해서 너의 사람으로 만들어야지, 양파껍질 벗기듯이 쳐내면 남겠느냐. 인간이란 모름지기 사람 장사니라. 그렇다면 무엇으로 교화시키겠느냐.”

순간 기지가 떠올랐다.

“압록강에서 잉어 석자짜리 다섯 마리씩 잡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이 엄동설한에? 얼음 두께가 아마도 두 자는 얼었을 것이다. 벌에는 사형(私刑)이 있고, 제도형이 있다, 네가 말하는 것은 사사로운 사형으로서 그것도 합당한지를 살펴야 한다.”

“잉어를 공물로 바치면 되옵니다. 그러면 제도형이 되겠지요.”

“누구에게 바칠 건가?”

“상감마마께 올리겠사옵니다.“

이항복 대감이 갑자기 상을 찌푸렸다.

“냅둬. 그것도 이여송 제독에게 진상될 것이다. 차라리 너희들이 고아먹고 다시 의논해라. 대신 행수는 내가 책임지고 모가지를 날리겠다. 의리도 없는 상녀르 자식이 행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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