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1장 무장의 길 <238>

이여송은 조상이 조선 출신이니 조선에 호의적일 것이라고 보았지만 그는 철두철미 중국인이었다. 조선을 깔아뭉개고 가벼이 여겼다. 그의 군사들은 일본군 못지 않게 조선 백성을 괴롭혔다. 평양성 승전은 고마운 일이지만 백성들은 피골이 상접했다. 도처에서 굶어죽는 자가 많았다. 명군의 착취와 수탈 때문에 관서지방과 해저지방은 거의 초토화되었다.

어느날 정충신은 이항복 대감을 만나 아뢰었다.

“대감 마님, 명군은 군량 대신 은을 군대에 지급하고, 군대는 그 은으로 상인들에게 군량미를 구입하여 군사를 먹이고 있습니다. 이여송 제독 역시 황제 만력제로부터 20만냥의 은을 하사받아서 조선 장도에 올랐는데, 명나라 상인들이 압록강 안으로 들어오질 않는다는 이유로 은을 군량으로 확보하지 않고, 대신 우리 백성들에게서 완력으로 군량을 빼앗았습니다. 당연히 농민에게 은을 주고 양곡을 바꾸어야 하는데, 은을 따까마시 해버렸다고 하옵니다. 이러니 백성들 원한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다 죽을 지경입니다.”

듣고 있던 이항복이 말했다.

“그렇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직접 상감마마를 뵈옵고 말씀드리자.”

이항복은 정충신을 대동하고 입궐했다. 왕은 평양성 탈환에 고무되어 있었다. 이여송의 이름자만 나와도 기분이 좋았다.

“상감마마, 이 제독은 군량미를 확보할 은을 갖고 왔는데 식량으로 바꿀 상인들이 따라오지 않는다고 은을 풀지 않고, 우리 백성들에게서 무상으로 군량을 징발했습니다. 당연히 그 값으로 은을 내놓아야 하는데 내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버려 두어라. 왜놈들 쫓아내준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닙니다. 그는 정당하게 군량미 예산을 가지고 왔으면서도 예산을 풀지 않고, 조선 백성들로부터 양식을 착취했나이다.”

“착취라니? 그런 불쾌한 말로 이 제독을 노엽게 하면 어떻게 될 것이냐? 따따부따 말고 물렀거라.”

정충신이 나섰다.

“상감마마, 저에게 재주가 있습니다.”

“재주? 어떤 재주?”

임금이 호기심을 보였다.

“상감마마께옵서 이여송 장군을 초대하십시오. 진귀한 요리를 하나씩 가지고 와서 잔치를 열자고 제의하십시오. 우리가 잉어 요리로 이 제독을 뻑가게 한 바 있습니다.”

“내가 어린애냐? 그런 짓 하려거든 너희나 하거라. 국사에 바쁜 사람을 가지고 노는 모습은 당치 않다.”

왕이 단번에 거절했다.

“그러면 병판 대감께서 초청하도록 하셔도 되겠사옵니까?”

왕이 그렇게 하도록 하교했다.

며칠 후 이여송이 휘하 막료들을 이끌고 왁자한 모습으로 요리집에 당도했다. 한 막료는 보자기를 씌운 둥그런 상을 들고 들어왔다. 보자기 안에는 진귀한 요리가 들어있을 것이었다.

“병판대감께서 독특한 취향도 갖고 있습니다, 그려. 지난번엔 잉어 요리로 내 입이 호강을 했습니다만, 오늘은 어떤 요리로 나를 기쁘게 할 요량이요?”

곧 잔치상이 마련되었다. 이여송이 가져온 진귀한 음식은 계두라는 계수나무에 사는 벌레였다. 당연히 입에 대지 못할 음식이었다. 엿먹이자는 수작이 역력했다. 이 자들은 이렇게 오만했다.

이항복은 이여송에게 산 낙지를 내놓았다. 꾸물거리는 낙지를 본 적도 없으니 당연히 먹을 줄 모르는 북방 내륙 출신 이여송이 기겁을 했다. 그는 끝내 먹지 않고 화를 냈다.

“먹는 것 가지고 장난하나?”

“그럼 내가 이 제독이 가져온 진귀한 요리를 먹겠소.”

이항복이 계두를 먹었다. 벌레의 창자가 입밖으로 삐어져 나오고, 더러운 똥물이 흘러내렸다. 그래도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그리고 이항복이 말했다.

“우리 백성들이 굶주려서 이렇게 벌레를 먹고 연명하고 있었소이다.”

이여송의 얼굴이 단박에 변했다.

“역시 백사 대감은 먹는 것에도 다 뜻을 담았군요. 내 용서를 빌리다.”

그는 곧 은을 풀어서 일부 징발한 군량 값을 갚았다. 정충신은 도와주려면 제대로 돕든가 해야지, 이게 무슨 꼴이여? 하고 속으로 투덜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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