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묻지 않은 섬, 여수 개도 ‘사람길’을 걷다

남도일보 정용식 상무의 남도 섬 이야기-여수 개도
때묻지 않은 섬, 여수 개도 ‘사람길’을 걷다
 

개도 사람길 2코스에서…전남 여수 개도는 유인도 49개 포함 365개의 섬을 거느린 전남 여수에선 돌산도와 금오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 넒은 청정 바다를 바라보며 절경들의 신비로운 자태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개도(蓋島), 개섬에 들어가다.

‘개도 막걸리’로 알려졌다지만 생소하다. 유인도 49개 포함 365개의 섬을 거느린 전남 여수에선 돌산도와 금오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란다. 형상을 본떠 붙여진 섬 이름들이 많아 지도를 자꾸 본다. 그럴 듯 하다. 섬에 우뚝 서 있는 천재산(328m)과 봉화산(338m)이 쫑긋 서있는 ‘개’의 두 귀처럼 보인다고도 한다. 어쨌든 주위에 많은 섬을 거느린다는 의미로 ‘덮을 개(蓋)’를 써서 개도라 했다는 데, 그곳의 ‘사람길’을 찾아 나섰다.

12월 8일. 칼바람 날씨. 가는 눈발을 헤치고 버스와 봉고차에 나눠탄 54명의 ‘남도 섬사랑모임’회원들은 장사익의 애절한 노래영상에 젖어들어 여수 백야항으로 향했다. 한을 담은 ‘님은 먼곳에’, ‘비내리는 고모령’등은 스산한 창밖 날씨와 맞물리면서 마음까지 애잔하다.
 

신흥 애기동백

한림 페리5호는 오전 11시에 백야항을 출발해 바로앞 ‘제도’와 멀리 고흥반도 남열해수욕장 전망탑, 낭도, 하화도를 펼쳐 보이며 25분만에 화산리 선착장에 도착했다. 안내방송에서 8명을 제외하곤 모두 내리란다. 대구산악회도 하선한다. 대부분 종착지인 금오도를 갈거라 잠깐 생각했는데….
 

2코스 가파른 산길

한적함이 묻어나는 항구 우측 끝자락에는 현대식 펜션도 보이고, 10여 가구나 있음직한 마을에는 개도민박 간판도 보인다. 좌측을 보니 돌산도와 연결된 화태대교의 멋진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민박도 겸한 화산식당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개도막걸리, 아침에 잡았다는 싱싱한 꼴뚜기, 농어탕에 밑반찬도 맛있다. 주인 부부의 소박함과 넉넉한 인심이 진하게 묻어난다.

#‘개도막걸리’를 마시다.

“한려수도의 깨끗한 물로 빗어 첫맛은 부드럽고 뒷맛은 깔끔하여 책 ‘막걸리’의 저자 이소리 시인이 가장 맛있는 막걸리로 선택한 대한민국의 으뜸막걸리”라고 적혀 있다. 앞에 앉은 처자는 달짝지근하여 맛있다고 연거푸다. 다른 분은 꾸릿 꾸릿한 냄새가 난다며 손사래를 친다. 궁금했다. 함량 표시는 없다. 주재료인 미분(쌀가루)은 수입산(?).

이소리씨는 전국의 유명막걸리로 물맛이 비결인 ‘무등산 막걸리’와 ‘개도 마신다는 막걸리 맛보았소’라며 여수 개도 막걸리를 칭찬했다. 정은숙은 ‘막걸리 기행’에서 여수, 강진, 해남 막걸리와 함께 개도 막걸리를 소개하고 있다.

‘미우새’ 와 ‘1박2일’등 TV프로에서도 극찬했다기에 유명세에 아주 색다른 맛을 기대했을까? 암바사와 비슷한 달짝지근한 맛이 강한 막걸리 맛을 순화시킨 느낌이랄까? 거기까지다.3코스를 걷고 언덕 넘어 마을길로 먼저 돌어온 일행은 마을 초입의 개도막걸리 주조장에서 직접 막걸리를 맛보는 행운을 누렸다. 2코스까지 걷고 호령마을에서 항구로 돌아온 우리는 시간에 쫓겨 차량으로 통과해 아쉽게도 주조장 막걸리 맛을 볼 수 없었다.
 

2코스에서 바라본 3코스방면

#사람길을 거꾸로 가다.

왜 ‘사람길’이지? 1.2코스에 이어 최근 완성된 3코스까지 총 11.3㎞다. 화산항에서 출발해 고흥 나로도를 보며 걷는 1코스, 남해바다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2코스, 금오도 함구미항이 지척에 보이는 3코스 등 개도 해안가를 한바퀴 돈다. 우리는 3코스와 2코스를 걷기로 하여 본전통인 화산마을 쪽으로 갔다. 갯벌을 매립한 매립지 뚝방길을 따라 30여분은 족히 걸어야 3코스 끝 지점인 정목마을 앞에 도착할 수 있다. 다행히 우리는 봉고차와 식당차가 몇차례 왕복해주는 수고 덕에 시간을 단축했다.

강렬한 햇살이 반사되는 바다풍광을 벗 삼아 애기동백이 줄서 있는 흙길과 자갈길을 따라 1시간 20여분 걸었다. 투박한 길이다. 가빠른 경사길을 오르락 내리락 몇차례 반복하다보니 산책길로 생각했던 분들은 힘들었겠다. 벼랑 끝 전망대에 도착하니 금오도가 잡힐 듯 들어오고 쪽빛바다! 탄성도 나온다.

청석포 몽돌해변, 잔잔한 바다가 피항처로 제격이다. 갯바위 낙시객과 낚시배들은 고기잡이에 여념이 없다. 3코스 길이 힘들었던 회원들은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산자락 들길 신흥마을과 화산마을길을 통과하여 원점 회귀하였다. 2코스는 수원지를 지나 본격적인 데크 오르막길이다. 천길 낭떠러지, 깎아지른 절벽 길을 타고 돈다. 그리고 다시금 산길을 올라 챈다. 추위에도 땀이 나는 산행이지만 바다풍광은 환상이다. 멀리 탁 트인 수평선, 무인도에 무인등대, 금오도의 끝자락, 청명한 하늘빛은 출발시 스산했던 날씨마저 잊게 만들었다.

이정표도 없고 마주치는 이도 없고, 간혹 수북이 쌓인 낙엽으로 길마저 헷갈리고 삼거리 만나면 당혹감마저 든다. 봉화산, 천재봉 정상이 가까이 있다 느낄 정도로 가빠르고 힘든 길을 오른다. 하늘에서 부은듯한 자갈밭의 낙석들은 데크 길도 파손시켰고 앞선 사람들은 멧돼지 가족 5마리도 만났다고 하니(사실이겠죠) 길손들의 불안도 있다. 그러나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비치는 바닷 풍광이 모든 힘든 과정을 훨훨 날려 보내 버린다,
 

2코스에서 본 남해바다와 나로도

2코스 전망대에 오르니 길게 늘어선 나로도가 눈앞에 펼쳐있다. 두시간여 힘들었던 시간을 위로하고 우리를 반기듯 종착지 호령마을 방송소리가 들린다.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이정표도 없어 언제 목적지에 도착할지 모르지만 그 길을 걷다보면 아름다운 풍광에 취하기도 하는 이런게 ‘사람 사는 인생’,‘사람길’ 이 아닐까? 지게지고 걸었던 ‘지겟길’, 소머리를 닮았다 해서 ‘소머릿길’로 마을에선 요청했다는데 여수시청에서 그냥 ‘사람길’, 뭔가 의미를 부여했을까 싶다.

화산식당에서 따끈한 해물라면, 돼지수육에 개도막걸리는 추위도 녹이고 피곤도 날렸다.
 

2코스에서 본 금오도

#섬여행이 주는 여운!

대구 산악회는 개도민박쪽에서 시작하여 헬기장에서 점심 먹고 봉화산 천재봉을 등산했다고 한다. 4시간 산행에 항구까지 오는 시간 30분을 더하니 얼추 배 시간에 맞춰졌다. 고흥에서 적금도 낭도, 둔병도, 조발도, 여수 화양까지 연결하고 백야도에서 제도, 개도, 월호도, 화태도를 통해 돌산도까지 연결하는 연륙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여수의 섬들이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다.

편안해 보이고 깔끔하게 단장된 마을들. 아직은 인간 때 묻지 않은 ‘개섬’. 이름 만큼이나 인심 또한 그대로 남아 있는 곳, 넒은 청정 바다를 바라보며 기암괴석 절경들의 신비로운 자태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마을길을 걷다보면 역사와 함께 한 설화들도 있을텐데, 주조장의 원액을 음미하며 이소리, 정은숙, 임원희 이연복 쉐프가 반했던 개도막걸리의 참맛이 무엇인지도 찾고 싶다. 다시 찾고 싶은 곳, 청정 하늘과 푸른 바다가 눈에 선하다.

사진 제공/남도 섬사랑 모임 김미정·김해수·진유화 회원
 

가파른 트레킹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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