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영유아 사망률과 ‘백신 메카’ 화순의 역할
구충곤 (전남 화순군수)

한파가 올 때면 마음 한구석이 더 편치 않다. 혹여 곤궁한 주머니 사정으로 추위에 떨거나 감염성 질환에 시달리는 아이나 어르신은 없는지, 염려 때문이다. 혹한기의 찬바람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에게 더 매섭다.

한편으로 특별히 마음 쓰이는 곳이 있다. 전체 인구의 25%가 필수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영유아를 포함한 170만 명에 이르는 어린이가 치명적인 질병에 노출된(UN OCHA, 2017년 보고서) 북한의 현실이 그것이다.

필자가 2000년대 초반 (사)광주전남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현 우리민족) 공동대표로 방문해 본 북한의 실상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당시와 비교하면 다소 나아졌다는 분석이 있지만, 국제기구가 발표한 보고서의 지표를 들여다보면 그 심각성은 여전하다.

세계보건기구의 ‘2017년 세계보건통계’에 따르면, 북한의 5세 미만 영유아 사망률은 1천 명당 24명이다. 남한(3명)의 8배에 이른다. 2017년 유니세프에 따르면, 사망 영유아가 한 해 1만 명으로 추정되고 영유아 사망 원인 중 폐렴이 14∼15%를 차지한다. 지역에 따라 수두, 설사, 결핵, 간염 등이 유아에게 나타나는 ‘흔한 질병’이라고 한다.

영유아의 건강·질병과 연관성이 있는 모성 사망률도 10만 명당 82명으로 남한 11명보다 대략 8배 많다는 보고도 있다. 특히 세계보건기구는 북한 전체 사망자의 원인 중 31%가 감염성 질환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기구의 2017년 결핵 보고서는 2016년 북한 결핵환자 수가 13만 명으로 전년에 비해 2만 명이나 늘었고 사망자 수도 1만 1천 명으로 전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지표는 필수 예방백신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치는 듯하다. 제때 예방백신을 접종하고 치료 약만 잘 복용했다면 죽음까지 이르지 않았을 생명이다. 이렇듯 아픈 아우성에 인도적인 지원에 나서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다행히 지난 12일 ‘남북 보건·의료 실무회의’가 열려 인플루엔자 정보를 시범 교환하기로 합의하고 감염병 정보 교환 방안도 협의했다. 보건·의료 분야의 남북교류협력이 다시 물꼬를 텄다.

우리 화순군도 보건·의료 분야의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활성화하는데 필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 영유아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가장 먼저 나설 것이다.

국내 유일의 ‘백신산업특구’가 있는 화순은 북한에 필요한 필수 예방백신을 지원할 수 있는 제반 조건과 역량을 갖췄다. 마침 ‘백신의 메카’ 화순에 있는 GC녹십자 화순공장에서 일본 뇌염, 수두, 신증후군출혈열(한타백신), 인플루엔자, Td(성인용 디프테리아-파상풍) 등 백신 다섯 종을 생산하고 있다. 북한이 지원을 원하는 예방백신이다.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당시 녹십자 화순공장이 백신 원액을 생산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것처럼, 화순이 북한의 영유아를 위한 백신·의료 지원을 중심으로 남북교류협력의 새 장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 화순군·녹십자 화순공장과 지역 사회가 마음을 모으면, 예방 접종을 못 해 죽음을 맞는 북한 아이가 한 명이라도 줄어들 거라 믿는다.

중장기적으로는 남북 보건 당국 간 교류협력에 발맞춰 지역 간 백신 공동 연구·개발과 공동 생산 등으로 영역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보건·의료 관계기관은 물론 사회단체와 주민이 참여하는 ‘화순형 남북교류협력 모델’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남북 실무회의를 계기로 보건·의료 분야의 교류협력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희망적인 기대감과 함께 걱정도 생긴다. 과거에 북미·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인도적 지원마저 중단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2007년 공동선언에 따라 남북은 북한 어린이 B형간염 예방백신 지원, 북한 어린이 홍역·풍진(MR) 예방백신 지원 등 9개 사업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해당 사업들은 이명박 정부 때 대북 제재인 ‘5·24 조치’로 중단됐다.

더는 그 어떤 이념적 잦대, 정치적 이해관계를 앞세워 인도적 지원과 교류를 외면하면 안 된다. 질병으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일은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

모처럼 맞은 남북 평화의 시대에 우리 화순만이 할 수 있는 인도적 지원 사업에 지역 사회의 관심과 참여를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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