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선물

<정세영 정치부 기자>
 

시간 참 빠르다. 올해 첫 해돋이를 본 게 엊그제 같은 데 벌써 연말이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다사다난한 해였다.

‘미투’ 운동이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각계각층을 휩쓸면서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 문화를 고발했고 지위를 이용해 약자를 괴롭히는 기업 오너 가족들의 낯뜨거운 ‘갑질’은 전국민의 공분을 샀다. 올해 청년 실업률은 매달 10%대 안팎을 넘나들며 고용절벽의 늪에 빠진 청년세대의 현 주소를 가늠케 했다. 우울한 경제지표도 서민들을 움츠려들게 했다. 장기실업자 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기선행지수 등 각종 지표들이 20년 전 외환위기 수준으로 악화된 것으로 발표됐다. 반면 판문점에서 분단 65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 정상 간 만남이 성사되면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된 역사도 기록됐다.

일일이 언급하긴 어렵지만 올해는 기자 개인적으로도 공사다망한 날들이었다. 송사에도 휘말렸고 투자 실패도 경험했다.

아쉬움과 답답함을 뒤로 한 채 얼마 남지 않은 올해 달력을 행복으로 꽉 채우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 보니 올해 온라인상에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킨 시 한편이 문득 떠오른다. 바로 초등학교 2학년 박호현 학생이 쓴 ‘개미 보는 것 공짜’라는 시다.

선생님께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공짜는 정말 많다/ 공기 마시는 것 공짜/ 말하는 것 공짜/ 꽃향기 맡는 것 공짜/ 하늘 보는 것 공짜/ 나이 드는 것 공짜/ 바람 소리 듣는 것 공짜/ 미소 짓는 것 공짜/ 꿈도 공짜/ 개미 보는 것 공짜.

힘들었던 한 해를 스스로에게 위로받고 싶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공짜 선물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공기를 마시며 살아있다는 데 감사하고 한 살을 더 먹는 성숙미를 갖게 된 것에 감격하고 바람 소리를 들으며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한다면 얼마나 멋질까.

물론 지인에게 평소 전하지 못했던 ‘사랑한다’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도 공짜라는 점 기억하시라. 연말이란 특수성이 있기에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는 건 덤이다. 며칠 남지 않은 2018년. 각박한 세상 속 잊고 살던 것들을 하나 하나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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