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정미숙 시인의 ‘등에 핀 꽃’
치열한 노동자의 삶 잔잔히 녹여내
헛꽃·아버지·익모초 등 80여편 수록
한점 한점 눌러쓴 펜촉의 날카로움 느껴져

정미숙 시인

“오래 전 아이 출산하며 생긴 흔적

철사 줄처럼 그어져 있는 아랫배를 홀로 숨어

지금도 그 상처를 스스로 핥아야 한다

타박타박 느린 걸음으로 온 어느 오후

몸과 마음 충분히 갉아먹은 다음

배부른 듯 뒤뚱거리며 사라져간 헛꽃

선로 사이의 침목처럼 이어가고 싶었을 뿐

떠나길 망설이는 새 되기 싫어

녹슨 고철더미 달빛 속에 몸 비비고 있다

달차면 기울고 매달 생리하듯

태풍으로 와서 홀연히 가버리면 남겨진 마음

쑥대밭이라는 걸 너도 잘 알거야

고운 눈에 헛꽃 피기 전에

신발 찾아 신고 열어두었던 쪽문으로

나가 발자국 찾아 헛꽃 피우며

헤맬지도 몰라”(헛꽃 전문)

노동 시인 정미숙이 18년만에 두번째 시집 ‘등에 핀 꽃(도서출판 작가)’을 최근 출간했다.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됐다. 시집에 수록된 80여편은 그리움과 향수, 그리고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번진 살내음이 빚어낸 애틋함을 시로 풀어냈다. 현직 노동자로서 바라보는 현장은 지치고 고되다. 하지만 시인은 표면적으로 바라보는데 그치지 않고 그 안의 모순을 꼬집는다. ‘오월의 어느날’에서는‘한 남자’를 통해 전형적인 노동자의 모습을 묘사한다. “하루 최저 임금으로/작년보다 올해가 더 힘들고 내년이 더 힘들어/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담배 연기 뿜으며 말한 그 남자”라는 표현은 현대사회 노동자의 일면이다. 특히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그남자들…(중략)…그렇게 세월을 죽이고 있겠지”라며 복수형으로 확대해 한국사회 어디서나 만나게 되는 쓸쓸한 노동사회를 꼬집는다.

다소 어두운 소재와 주제가 많지만 사랑으로 바라본 삶에 대한 시인의 애정도 담겨있다. 시인은 ‘봄날 그 감나무’에서 봄에 피어나 생기와 활력을 되찾는 나무의 생장을 통해 삶의 이상적인 청사진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각질은 굳어져 검고 축축한 나무 한 그루에서/이렇게 많은 잎사귀가 숨어 있었다니/내가 떠나온 생의 근원이 너였구나/어서, 불길 만나러 가자구나”라고 말하며 낯익고 정겨운 일상의 배경을 이루는 존재를 통해 생명의 근원을 조명했다.

자신이 만난 시간과 공간, 사물, 인물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도 담아냈다. ‘아버지’라는 시의 “왼손엔 새끼줄에 꿴 연탄 한 장 들고/오른손엔 지푸라기에 묶인 간갈치 몇마리/어깨에걸고/갈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처럼 걸어가던 당신”이라는 표현을 통해 삶의 무게를 지닌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냈다. 시인은 이를 두고 “온몸으로 쓴 시”라고 말하며 무거운 짐을 진 아버지의 모습에 대해 아파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생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한다.

정훈 문학평론가는 이 시집의 ‘헛꽃’에 대해 “헛꽃을 찾아서 헛꽃을 피우려 하는 시인의 마음이 심란하게 펼쳐져 있는 시다. 시인의 경험과 기억속에서 꿈틀거리는 숱한 삶의 거죽들과 만남이 지금에 와서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번 시집은 삶의 다양한 양태와 감정들이 사계의 변화처럼 다채로우면서도 생의 빛나는 절정을 향해 한 점 한 점 꾹 눌러쓰는 펜촉의 날카로움이 느껴진다”고 평했다.

정 시인은 헛꽃을 ‘피지 않는 꽃’으로 규정하고 있다. 자신이 노동자로서, 나아가 시인으로서 아직 피지 않았다는 의미를 담겨 있다. 정 시인은 “첫 시집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내서 감격스럽기도 했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아 이번 시집을 출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며 “올해가 아니면 안 될것 같아서 무리하면서 책을 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정미숙 시인은 전남 고흥출신으로 ‘시인정신’을 통해 등단했다. 지난 2000년 개인 첫 시집‘이카루스의 날개’를 출간했으며 ‘이카루스 정미숙’시화전을 현대 아트갤러리에서 열었다. 초당대학교에 출강한바 있으며, 현재 지역 방직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아리 기자 har@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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