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2장 선사포 첨사 <247>

백사 이항복이 정충신을 행랑채로 불러들여 걱정했다.

“네가 선사포 진을 맡는 것은 장수로 가는 길목이요,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먹고 입는 것이 문제로구나.”

정충신이 나섰다.

“대감 마님, 병졸과 함께 먹고 자고 입고 해야지요. 장졸간에 차이가 없는 군인생활을 하는 것이 저의 군 철학입니다.”

“지휘관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군신유별(君臣有別)이 있듯이 장졸간에도 법도와 규율이 따로 있는 법이다. 나이어린 지휘관일수록 군율에 엄격해야 한다. 나이 많은 지휘관은 때로 병졸과 함께 뒹구는 것이 도량과 배려로 보이지만, 나이가 비슷한 또래끼리 먹고 마시고 뒹굴면 품격이 사라지고 권위를 잃는 법이다. 너에게 진을 맡기는 것은 기회지만, 또한 너를 시험하는 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명심하겠사옵니다.”

“야전 장교는 강(强)과 용(勇)만 있으면 되지만,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은 강과 유(柔)를 겸하여야 하느니라. 변방 군인들은 죄인으로 귀양간 자가 많으니 특히 유의해야 한다.”

“알겠사옵니다.”

“먹고 입는 것도 절도있고 분명해야 하거늘 혼인을 맺어서 관복·군복·예복은 물론 먹는 입성도 가려야 한다. 장수가 되는 길은 품격을 완성하는 자리다. 병사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니 먹는 것 입는 것 모두 허수이 여겨선 안된다. 그러니 혼사를 해야겠다.”

“네?”

정충신이 놀란 눈으로 백사를 바라보았다.

“너를 뒷바라지해줄 여자 말이다.”

정충신은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내일 임금께 사은숙배(謝恩肅拜)한 다음 각 중신(重臣)과 장신(將臣)들께 인사를 한 뒤에 저녁 무렵 공 참판 댁을 들르거라.”

공 참판이라면 사대부 중에서도 지체있는 집안이었다. 정충신은 백사 대감이 이른대로 다음날 궁궐에 들어가 두루 인사를 하고, 해질녘이 되어서 공 중신 댁에 들렀다. 공 중신이 정충신을 정중히 안방으로 맞아들였다. 방 가운데엔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요리상이 차려져 있었다. 정충신이 자리에 앉으면서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머쓱이자 공 참판이 말했다.

“오늘은 나와 함께 석반(夕飯)을 하면서 정담을 나누세나.”

“백사 대감께서 찾아뵈오라고 해서 찾았는데 이렇게 성찬을 마련해주시니 고맙긴 하지만, 무슨 일이신지...”

“첨사 취임을 축하하네. 이제 보니 벌써 대장부가 되었군. 하기야 나이 열아홉이니 그럴만도 하지.”

“사실은 에먼 나이를 하나 더 먹었습니다.”

“에먼 나이라니?”

“본래는 제가 을해생(1575년)입니다. 그런데 섣달 스무아흐렛날 태어났으니 하룻밤만 자면 병자생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정충신 생년월일은 음력으로는 1575년 12월29일이고, 양력으로는 1576년 2월11일이다. 역사 기록에는 양력 기준 1576년 생으로 올라있다.

“어쨌거나 열여덟이든 열아홉이든 성년이 된 것 아닌가. 나는 열일곱에 첫아들을 보았네. 나이가 찼으니 혼인을 하여 가정을 이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소인은 공명(功名)을 이루지 못할까 걱정일 뿐, 내자가 없는 것은 걱정되지 않사옵니다. 노력하여 공을 세운 뒤에 혼인할까 하옵니다.”

“공을 세우기 위해서도 가정이 필요하지. 총각으로서 돈 벌어 한 세상 잡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네. 가정을 이루면 더 많은 돈을 비축하게 되고, 출세도 빠를 수 있지. 현처(賢妻)가 자산인 법이야.”

“부모님도 천리 타향에 계시고, 제 혼인을 위해 불원천리하고 한양에 쉽게 오실 수 있는 처지가 못되옵니다. 성공한 뒤 모양있는 혼인을 하고 싶습니다.”

“장도에 오른 만큼 다른 것은 몰라도 든든한 내자를 하나 마련해서 떠나는 것이 좋을 것이야. 백사 대감도 그 점 유의하셨네. 그래서 약조한 바가 있었지. 장 안되면 부실(副室)로 데려가게.”

“부실이요?”

“첩실(妾室)이네.”

밑도끝도 없이 말하자 정충신은 더욱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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