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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가 만난 사람> 이태복 윤상원기념사업회 이사장“윤상원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

<남도일보가 만난 사람> 이태복 윤상원기념사업회 이사장
“윤상원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
호남권 바탕으로 영남권 등 전국화·세계화 나서야
생가 복원·전남대 민주길·판소리 LP판 등 사업 확장
 

이태복 전 장관
이태복 윤상원 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윤상원 열사가 한 일, 역할, 위대성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며 “광주전남지역에서도 5·18민주화 투쟁하면 윤상원 열사가 떠올라 역사에 대한 이해가 풍부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윤상원 열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윤 동지의 민주정신을 전국에 널리 알리고 세계화하는데 앞장서겠습니다.”

최근 (사)윤상원기념사업회 신임 이사장에 추대된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윤상원 열사의 정신이나 삶의 태도를 본받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우리 사회를 위해 중요하다”며 이같이 포부를 밝혔다.

5·18 유공자인 이 신임 이사장은 충남 보령출신으로 1979년 전국민주노동자연맹(전노련)을 세우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윤상원 열사와 노동운동에서 인연을 맺어 사업회의 이사로 참여해 왔다.

이 이사장은 5·18당시 계엄군의 시민 학살과 윤 열사의 사망 소식은 살아남은 자로서 광주의 진상을 알리고 더 적극적인 투쟁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로부터 1년 뒤 학림 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돼 고문 기술자 이근안 등에게 갖은 고문과 구타를 당하다 거짓으로 자백,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되면서 1988년 특별석방ㆍ사면복권됐고, 노동자신문 등을 발간하며 노동운동을 계속하다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복지노동수석비서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

남도일보는 지난 27일 광주 동구 윤상원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이 이사장을 만나 윤상원 열사와 5·18 민주화운동, 윤 열사 상징화 사업 등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대담=김경태 사회부장
 

대담
남도일보는 지난달 27일 광주광역시 동구 윤상원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이 이사장을 만나 윤상원 열사와 5·18 민주화운동, 윤 열사 상징화 사업 등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고(故) 윤상원 열사와 함께 한 5·18 민주화운동 당시 투쟁상황은.

▶윤상원 동지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 내려는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윤 동지는 전남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주택은행에 입사해 평탄한 일생이 보장됐었다. 하지만 어려운 사람들 곁에 다가가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겠다고 결심하고 퇴사를 단행했다. 그는 조용하고 착실하며 공부만 잘하는 샌님이 아니라 자기주장을 확실히 하는 단호한 사람이었다. 80년 봄, 사회 전반에 걸쳐 민주화 투쟁을 이끌어 내기 위해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해내고 시민들을 이끌어낸 행동력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 민주화 투쟁에 관한 발판이 마련돼 있지 않아 힘든 부분이 많아 계엄이 확대되고 많은 동지들이 잡혀갔다.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진압에 대해 저항과 항쟁을 이어나갔지만 광주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민주화 투쟁을 하기 어려웠다.

-윤 열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그리고 윤상원기념사업회에 대해서도 소개해 달라.

▶노·학연대(학림) 전국 조직을 구성하고 있었던 1978년 광주 동구 계림동 녹두서점에서 윤 열사를 처음 만났다. 당시 은행원을 그만두고 노동운동에 뛰어든 그의 신념과 삶의 태도를 보고 광주·전남 조직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상원이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말도 없이 곧바로 수락했다. 그후 1980년 5월 계엄군이 광주를 봉쇄하기 직전까지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투쟁 방향 등을 논의했다. 윤 동지가 사망한 5월 27일 당일에도 마지막 통화를 했다. 윤 동지는 전두환 신군부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해 민주인사들을 체포구금하자 시민군 대변인으로 당시 전남도청을 끝까지 지키다 27일 새벽 계엄군의 무력에 의해 사망했다.

윤상원기념사업회는 윤 열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5·18 당시 항쟁지도부와 들불야학, 녹두서점, 학림사건 관계자와 전남대·살레시오고 선후배 등 15명이 주축이 돼 2013년 3월 창립, 각종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윤 열사 기념사업회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업과 계획 중인 사업은 어떤 게 있나.

▶호남과 수도권을 제외하면 영남권 지역 등에서는 아직 민주화 투쟁에 대한 여러 편견이 남아 있고 윤상원 열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의식을 계승하기 위해 5·18 민주화 투쟁, 윤상원 열사의 상징화 사업 등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나가려고 계획 중이다. 상징화 사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에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돼 책이나 영화·판소리 LP판 제작, 생가 복원 사업, 전남대 민주길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 대구·경북지역에도 기념사업회를 발족해 윤상원 열사 스토리를 지역 간담회에서 소개하기로 했다. 이런 사업들을 통해 기념사업회의 일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저변을 확장하려고 한다. 특히 전남대 민주길·윤상원 홀 건립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전국에 있는 초등학생들이 민주화 투쟁에 대해 배우고 학습할 공간이 많이 부족한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재 윤봉길 추모사업 ‘월진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초등학생 1천 명이 인성교육 등에 참여한 적이 있다. 교육 후 학생들의 윤봉길 의사에 대한 생각이 확연하게 달라진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윤상원 열사와 민주화 투쟁에 대해서 아이들의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살길이 있었는데도 당당하게 죽음의 길을 택한 윤 열사를 보고 학생들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광주 광산구 신룡동 천동마을에 있는 윤상원 생가를 정비해 살아있는 역사 교육 현장으로 활용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생가 복원사업은 최근 광산구와 협력해 발주했다. 대지 660㎡정도를 추모관 비슷하게 건립해 내년 5,6월께 완공할 계획이다.

-윤 열사 상징화 사업은 가능한 것인가? 또 득이 되는 것인가.

▶세계 어느 나라에도 투쟁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이 있고, 그것을 모두 상징화해 시, 소설 등에 표현하고 있다. 판소리를 민중 운동의 무기로 활용하는 국악인 임진택 선생의 윤 열사를 테마로 한 판소리 판이나 영화 제작 등을 통해 상징화 사업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윤상원 기념사업회라고 해서 광주 민중들을 다 빼고 윤상원 열사만 강조하는 게 아니다. 윤상원이 투쟁한 것을 그려내 민주화 투쟁을 기억하고 고취시켜 민주화 투쟁과 윤 열사 모두 상징화해 서로 시너지를 내게 할 것이다. 기존에는 광주 민중 전체의 투쟁을 강조하다 보니 윤상원 열사와 같은 개인의 소중한 자산을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대중들 사이에서 5·18에 대한 비판적, 부정적인 견해가 있기도 하다. 그 가운데 5·18 단체의 이권 논란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부끄럽게 생각한다. 1980년대 우리 사회에 민주화를 이끌어내고 이뤄내는데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굉장한 동력을 제공했고 시초가 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본 고장인 광주에서는 존경하거나 대표적인 리더를 형성하지 못했다. 또한 서울, 경기 등의 지역에서는 운동권 단체에 대한 기부 문화가 자리잡았으나 광주는 미미한 상황이다. 광주지역 운동권 단체의 입지가 작아 문화를 형성하는데 어려운 점이 있고 그런 악조건들이 중첩되다 보니,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오해를 받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그 결과 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시민들이 5·18 민주화 투쟁에 대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윤 동지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건더기가 없다고 자부한다. 이런 가운데 국민들이 잘 모르는 윤 열사를 알리고 부각시킨다면 분명 큰 화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윤상원 열사의 의로운 죽음은 자발적인 죽음으로 의미가 크다. 하지만 5·18을 대표하는 이러한 위대성이 대중들에게 너무 알려지지 않았다. 광주지역에는 민주화 투쟁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 윤 열사의 상징화 사업에 대해 조심스러운 면도 있었다. 그러나 동학농민운동하면 전봉준, 3·1운동 하면 유관순 열사가 떠오르듯, 광주·전남지역에서도 5·18민주화 투쟁하면 윤상원 열사가 떠올라 역사에 대한 이해가 풍부해졌으면 한다. 언론에서 적극적인 보도를 통해 도와줬으면 좋겠다.
정리/정다움 수습기자 jdu@namdonews.com



▲걸어온 길
-1950년 충남 보령 출생
-국민대학교 법학 학사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석사
-순천향대학교 사회복지학 명예박사
-2001년 대통령비서실 복지노동수석 역임
-2002년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역임
-2003년 청조근정 훈장 수상
-2007년 5대거품빼기 범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
-2013년~ 국민석유 대표이사, 이사회의장
-2013년 5·18 민주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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