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2장 선사포 첨사 <248>

“첩실, 소실, 부실이라뇨?”

“몰랐던 것인가?”

공 참판이 길게 설명했다.

“사나이 대장부란 자고로 소실 또는 첩실이 있어야 하네. 자네 같은 장래가 촉망받는 청년은 더욱 소실이 필요하지. 당장 혼인을 할 수 없는 처지라면 소실을 둘 필요가 있어.”

“저에게 소실은 당치 않습니다.”

“소실을 얻는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세. 상민의 부모들이 여식을 시집보낼 때 가난뱅이 상놈보다 밥술깨나 먹는 부잣집 소실로 보내는 것을 더 바라지 않나. 하지만 자네는 가난한 집 딸을 소실로 맞는 것이 아니니 안심하시게.”

그러나 고관대작이 한사코 여자를 묶어주겠다는 것이 의아스러웠다.

“대감 마님, 저보다 훌륭한 총각들이 많습니다요.”

“내 사정을 말하지. 나한테 처조카가 있는데 우리집에서 죽 자랐네. 하양 허씨일세. 하양 허씨는 대대로 효자 효부가 많이 나는 집안이네. 세종 임금 때 허조라는 분은 좌의정을 지낸 바 있고, 문경공 시호를 받은 분일세. 그 후손이라서인지 예의법도가 각별하네.”

“저희 부모님은 여자는 아무리 총명하여도 이목구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는 예쁘고 자태가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다.

“그 점 여부는 있네. 생기기는 아무렇게나 생겼지만 용렬하지 않다니까. 그 아이가 한사코 당대 영웅이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하니, 그런 총각을 물색중에 정충신 첨사를 보게 되었네. 그래서 백사 대감께 간청했는 바, 백사 대감의 허락을 받았네. 거부할 수 있나?”

“스승의 말씀을 저버릴 수는 없지요. 하지만 저도 의견은 있나이다. 나이는 어떻게 됩니까.”

“스물일세. 대저 이팔 청춘에 시집가서 떡두꺼비같은 아이를 생산하는데 그 아이는 네 해가 지나도록 혼처를 구하지 못했어. 그래서 내자도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네.”

한양에서는 문벌을 중시하는 풍조인데 공 참판이 문벌도 안보고 자기를 처조카 사위로 삼겠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대감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따르긴 하겠습니다만, 지금 군령을 받고 내일 임지로 떠나는데 어떻게 성례를 하고 가겠습니까. 정혼을 해두었다가 벼슬이 다른 곳으로 옮겨질 때 성례하고 동거하겠습니다.”

그러자 공 중신이 머리를 흔들었다.

“객지에서 먹고 입을 것이 마땅치 않으면 사람이 몹시 상하네. 병이라도 얻으면 사나이 대장부가 펼칠 꿈이 좌절될 수가 있지.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을 어찌 다치게 해서야 되겠는가.”

그는 백사 어른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공 참판이 다시 말을 이었다.

“평화로운 때라 할지라도 사람의 일은 앞을 기약할 수 없는 법, 난리 중인 지금은 다 말할 나위가 없지. 자네가 선사포 진에서 일년이 될지, 삼년이 될지 근속 일자가 기약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러니 서두르는 바이네. 아니, 정 그렇다면 작수(酌水) 성례(成禮)라도 하고 가는 것이 옳겠네.”

공 참판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안방으로 들어갔다가 한참 후 다시 돌아왔다.

“내자에게 작수성례라도 하자고 했더니 아내의 말이 난리 중에는 성례를 하는 것이 번거로우니 정충신이 임지로 가는 길에 함께 조카를 달려 보낼 행장차림이 더 급하다고 하는군. 내 생각도 그러하니 자네가 떠나는 날 홍제원으로 처조카를 보내줄 터이니 데리고 가게. 소실로 데려가라고 하는 것도 법도 때문이야. 나라 법도에는 변방으로 나가는 무신이 처자는 못데리고 가게 되어있네. 그러나 소실은 어긋나지 않지.”

소실은 야전장에서 함부로 굴려먹어도 된다는 뜻일까. 정충신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소실로라도 묶어서 보내겠다는 것이 정충신은 여러모로 미심쩍었다. 정충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절을 하고 말했다.

“소인이 정처를 맞이하는 것도 분수에 넘치는데 소실로 데려가라 하시는 것은 봉행할 수 없습니다. 정실로 맞이하겠습니다. 정혼이 저에게는 온당한 처사이옵고, 임지에서 돌아오면 성례를 하겠습니다.”

공 참판이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아니, 내 말을 아직도 못알아 듣겠는가. 내일 홍제원으로 여자아이를 보낼 것이야.”

다분히 강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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