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2장 선사포 첨사 <250>

오방색 가마를 지켜보던 환송 군관들이 정충신을 향해 소리쳤다.

“정 첨사, 장가도 안든 줄 알았는데 소실까지 두었나? 영웅호걸은 주색을 밝힌다더니 정 첨사는 일찍이 영웅호걸에 적을 올린 셈이군, 하하하.”

“나도 이십이 다된 사내대장부야. 지금까지 장가를 아니갈 수 있나. 나를 총각으로 안 귀관들이 우습군 그래.”

정충신도 넉살좋게 받아쳤다. 가마꾼이 가마 문을 열자 예쁜 비단옷을 차려입은 여자가 조심스럽게 가마 밖으로 나왔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이 광경을 지켜보는데, 신부의 키는 남자 이상으로 크고, 말 눈보다 큰 눈망울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주안상 쪽에 서선을 주었다. 군관 하나하나를 눈여겨 보는데 신부답지 않은 태도에 모두들 기가 질렸다.

“우리 일어나세.”

군관들이 상황을 알아차리고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노십시오. 저는 신방으로 가겠습니다.”

일어서는 군관들을 향해 신부가 말렸다. 다소곳해야 할 신부가 얼굴을 들고 말하다니, 정충신도 질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충신은 자신을 맞을 여자가 사실은 아담한 키에 가는 허리, 눈은 크지만 작은 입에 뽀얀 볼을 가진 여자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이러니 소실로 준다고 하고, 한사코 데려가라고 했을까. 이제 와서 물리거나 그만둔다고 할 수도 없으나 마음 같아서는 물리고 싶었다. 그러나 중도포기는 백사 대감을 실망시키고, 공 참판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 될 것이다.

밤이 되자 정충신은 객관에 들었다. 평소보다 얼큰하게 취한 정충신이 객관에 차려진 신방으로 들어서는데 취중에 보아도 그녀는 눈에 들지 않았다. 정충신이 다소곳이 고개를 수그리고 서있는 그녀를 살피다가 말했다.

“이런 변변치 못한 사람을 따라오느라고 고생 많았소. 앞으로 더 많은 고생을 할 터인데, 그것을 생각하면 내가 더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구료.”

“미안해할 것 없사옵니다. 여자는 낭군에게 매인 사람이니 낭군이 하는 일에 복종하고, 대사를 수행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성심을 다해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말했으나 목소리가 투박해서 고목의 등걸 같았다. 여자라는 맛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충신이 “나는 왜 여자 복이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다르게 말했다.

“나는 전방 작전을 짜야 합니다. 작전에 들어가 해서지방과 관서지방의 산적들을 무찌르고 선사포로 올라갈 테니 먼저 올라가 있도록 하시오. 심야회의를 소집하러 시방 나가야겠소.”

그렇게 말하고 신방을 나오려는데 소실이 그의 앞을 막았다.

“취중에 가면 안되지요. 부관들 앞에서 실수를 하게 되면 체통이 안섭니다. 그리고 지금 산적 토벌에 나선다는데 낭군님에게 군사가 있나요?”

수행 군사는 모두 여덟이었다. 군사랄 것이 없었다. 그저 호위병일 뿐이었다. 이들을 데리고 수백 명의 산적들을 물리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다만 이 여자를 피하고 보자는 것이 그런 생각을 갖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신부는 냉정하였다.

“평안감사에게 치진(馳進)하고 병부도 맞춰보기 위해서 평양으로 먼저 가셔야 합니다. 내행(內行)은 날이 밝은대로 선사포로 출발하겠나이다.”

그녀의 판단은 정확했다. 맨 몸으로 산적을 처지하고 떠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전략이고, 그래서 소실은 냉철하게 현실인식을 하라고 평안감사에게 가서 치진해 병부를 맞춘 뒤 군사 진용을 짜라고 일러준 것이다. 그녀는 분별력있는 확실한 그의 군사참모였다.

정충신이 나가려다 말고 생각을 고쳐먹고 말했다.

“자, 우리 자리에 앉읍시다.”

“평안감사가 대가 센 분이오이다. 그렇더라도 낭군께서는 기죽지 말고 의연하시오. 멋진 모습 보여야 합니다. 초장에 싼 티를 내면 밟히거든요. 들이대려고는 말되, 할 말은 해야 합니다. 그 점 유의하시고 선하당에 나가십시오. 신첩은 내일 날이 밝는대로 선사포로 떠나겠나이다.”

“아니오. 나와 동행해야지요.”

정충신은 금세 마음을 달리 먹었다. 그녀의 총기와 지혜는 그의 길을 안내하는 등불이 될 것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낭군님이 나를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니 먼저 떠나도 되고, 또 잠도 따로 자도 무방하옵니다.”

“그럴 리가 있겠소.”

그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보이기라도 하듯 그녀를 끌어안자, 그녀가 먼저 그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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