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욕(汚辱)의 역사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전두환씨의 거듭된 형사재판 불출석과 이순자씨의 ‘전두환은 민주주의의 아버지’ 발언을 대하면서 역사의 정당한 심판과 역사바로세우기가 얼마나 지난(至難)한 과제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정당한 심판은 ‘법의 맹점을 이용한 꼼수’ 때문에, 역사바로세우기는 전두환 일당을 음성적으로 비호하는 극우잔존세력의 ‘역사 비틀기’ 때문에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국가와 겨레를 능욕하고 배신한 자에 대한 평가와 법의 집행은 추상같아야 하고 단호해야 한다. 우리가 이런 엄중함을 잃어버린 것은 과거 역사 속에서 백성에게 죄를 지은 관리와 인물들에 대한 징치를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백성에 지은 죄가 중한 벼슬아치라 하더라도 당파(黨派)는 비호하기 일쑤였다. 오히려 나중에 더 높은 자리를 안겨주기도 했다.

우리는 그 연원을 ‘광복 후 일제 부역자들에 대한 심판과 처벌 실패’에서 찾는다. 독립 운동가들을 체포해 고문하던 친일부역자들이 이승만 정권하에서 권력자가 돼 호통을 치는, 그 방기(放棄)와 허접함이 민족정기를 흐리게 했다. 친일부역자들을 정권지탱의 하수인으로 삼은 몽매함과 탐욕이 결국은 대한민국의 정치·경제·문화사를 비비꼬이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무지함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1894년 음력 1월 전북 고부에서 백성들이 탐관오리 조병갑의 학정에 견디다 못해 봉기했을 때 장흥부사 이용태는 벽사역졸 800여명을 끌고가 고부를 생지옥으로 만들어버렸다. 장정들은 죽이고, 아녀자들은 능욕했다. 조정은 백성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어떻게 해야 권력을 유지하느냐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용태에게 상을 내렸다. 조병갑 역시 마찬가지였다. 6개월 동안 형식적으로 귀양을 갔으나 승진을 거듭해,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에게 사형판결을 내린 재판관이 됐다. 권력을 위해 백성들을 수탈하고 죽인 권력자와 그 추종자들에 대한 심판을 우리가 엄히 했더라면, 헬기와 총칼로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광주의 비극’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추악한 정치권력’을 냉정하게 징치하지 못하는 일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시민들의 여론과는 달리 유력정치인이 낙하산 시장후보를 내려 보냈어도 그게 통했던 일이 불과 5년 전에 광주에서 벌어졌었다. 그런 헝클어진 정치역학구도가 있기에 ‘전두환 버티기’와 ‘자화자찬’이 가능한 것이다.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냉정한 판단력과 실천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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