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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2장 선사포 첨사 <252>

평양감사가 화려한 호피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단 아래로 뚜벅뚜벅 걸어 내려왔다. 그리고 정충신 앞에 서서 말했다.

“그대야말로 나라를 지키는 진정한 군인이다. 변방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나 다들 기피하는 지역이다. 그대가 왔으니 경비에 소홀함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만약 군령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그대는 군법에 의하여 가차없이 처단하라. 그렇게 군기부터 잡기 바란다. 특명이다.”

“알겠습니다. 명령을 충실히 따르겠습니다.”

정충신 첨사가 제자리로 돌아가자 우병방이 호령했다.

“정충신 첨사는 임지로 부임하라!”

정충신이 병부를 곱게 접어 챙기고 칼을 차고 활과 화살통을 메고 뜰을 나와 호위 군사를 수습해 길을 떠나려는데 좌병방이 급히 나오더니 소리쳤다.

“사또께서 의례절차 없이 잠시 들어왔다가 가시라고 하십니다.”

깍듯한 존대어였다. 좌병방이라면 평양감영에서 꽤 행세하는 신분이다. 나이도 사십 쯤 돼보이는 관록이 붙은 상이다. 그런데도 정충신에게 주눅이 들어서 깍듯이 예를 취하는 것이다.

그가 다시 선화당으로 들어서자 평안감사가 말했다.

“아까 군례로 행한 것은 국가 의례행사에 따를 것일 뿐만 아니라 그대가 처음으로 변방의 군사책임자로 부임하는 것이니 이곳 군법을 따르도록 행하는 일인즉, 다행히도 어떤 누구보다 충실히 잘 따랐도다. 지금 내 휘하에는 각 군읍면에 수령과 변장(邊將)이 많으나 믿을 사람이 없더니 그대 같은 믿음직한 젊은 첨사가 오니 백만 군사를 얻은 것만큼이나 마음 든든하다. 그대가 내 부하가 된 것이 친자식을 얻은 것만큼이나 기쁘도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거든 지체말고 전령을 보내주시게.”

바로 방금 전까지 추상같던 사람이 이렇게 태도가 일변(一變)할 수 있나 할 정도로 감사는 다정하게 대했다.

“감사 어르신의 말뜻을 잘 받잡고 떠나겠나이다.”

“그것만이 아닐세. 이렇게 훌륭한 군 지휘관을 그냥 보낼 수야 있는가.”

잠시 후 언제 준비했는지 잘 차린 술상이 나오고 기생 십여명이 오색 비단옷을 입고 들어와 두 손을 올려 큰 절을 했다. 감사가 기생들을 향해 일렀다.

“나에게 예를 차리는 것은 늘 하는 것이니 그럴 것 없다. 이 자리는 선사포 첨사로 부임하는 정충신 젊은 지휘관을 축하하는 자리이니라. 나한테 보다는 정 첨사에게 각자 절하고 술 한잔씩 올려라.”

“아닙니다. 어떤 자리든 선후가 있고, 상하가 있습니다. 감사 마님께옵서 먼저 받으시고 제가 받겠사옵니다.”

정충신이 정중히 사양했다. 그러나 기생들이 교태를 부리며 정충신에게 술을 권하는데, 어쩔 수 없이 술을 받아먹었다. 이래서 평양에 오는 벼슬아치들이 녹아버린 모양이었다.

“정충신 첨사, 오늘 저녁 저하고 정분 나누어요.”

열여덟아홉 쯤 되는 기생이 귓불이 빨개진 정충신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면 어떡할 거요.”

“소첩을 데리고 살아야지요.”

정충신이 주춤 몸을 사리자 기생이 재미있다는 듯이 까르르 웃으며 다른 자리로 옮겨갔다. 그러자 다른 기생이 다가와 술잔을 올리더니 속삭였다.

“술을 하시는 정 첨사가 꼭 동자처럼 귀엽다니까. 품에 안고 자기 좋은 남잔데 나랑 정분 나눌까요?”

정신이 얼얼한 가운데 정충신은 바짝 정신을 차렸다. 어쩌면 사또가 자신을 시험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함께 노닥거리면 그놈이 그놈이라고 여기거나, 다같이 타락한 처지이니 앞으로 끽 소리 못하게 입을 닫게 될 것이다. 유혹에 빠지면 안된다. 정충신은 바짝 정신을 차렸다. 백사 어른이나 공 참판이 소실을 임지로 데려가라고 한 것은 주색에 빠지지 말라는 뜻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젊은 남자가 욕망을 채우지 못해 유곽을 찾거나 객주집, 주막을 찾으면 주색에 탐닉할 개연성이 높다. 빠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남자는 본디 유혹에 쉽게 빠져들 기질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인격이 훌륭한 사람도 본의아니게 무너지게 된다.

정충신은 백사 영감과 공 참판 나으리의 깊은 속을 마음으로 헤아리고 스스로를 굳게 다짐했다. 어떤 유혹도 멀리 하리라. 평안감사가 술에 취한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정 첨사, 왜 그리 멈칫거리나. 설사 고자는 아니겠지? 평양기생을 돌같이 알면 남자가 아니야. 안그런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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