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옥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2)2구간‘밀목재-수분령’

계곡 계곡 산벚꽃들 흐드러지게 피어나
사두봉 아래 백두대간 이어져…멀리 지리산 연봉도
바구니봉재 넘다보면 “산길을 간다” 노래 절로 나와

산성비에 낙엽 썩지 않아 등 등산로 다소 미끄러워
벌목현장 눈에 거슬려…내 자신이 나신이 된 느낌

사두봉을 내려가는 길에 바구니봉재를 지나면 백두대간에서 이어진 호남정맥이 길게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4월 중순 호남정맥은 하얀 산벚꽃과 연노란 새순들로 물들어 있다./강행옥 변호사
사두봉을 오르는 등산로에 내거린 산악회 동호회 리본들.
밀목치와 사두봉을 안내하는 이정표.
산기슭에 수줍듯 싹을 틔운 산드릅나무.

원래 토요일(2018년 4월 14일)에 등산을 예정했으나 비가 많이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어 하루 앞당겨 재판이 없는 오후에 호남정맥 두 번째 구간을 종주하기로 마음먹고 1시쯤 집을 나섰다. 오후 2시경 수분재 10km를 앞두고 지난 번 장수 개인택시에 전화를 하고 수분령 휴게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수분령 휴게소에 도착해 보니 부지런한 택시기사님은 벌써 도착해 계신다.

수분령에서 등산 시작지점인 밀목치로 택시로 이동하는데 벚꽃은 벌써 끝물이지만 봄 풍광이 저으기 평화롭다. 마을 입구에서 2시 20분 하차하여 바로 880봉으로 향하는 등산로로 치고 올랐다. 종주개념을 잘 모르는 기사님이 지난 주 하산지점이 아닌 사두봉 등산로 근처에 내려주신 것 같다. 잘 지어진 전원주택을 뒤로 하고 오르니 바로 사두봉을 가리키는 팻말이 나타나는데, 등산로 입구는 바람에 부러진 소나무 가지가 길을 막고 있다. 지난 주에 겨울 삭풍을 연상케 하는 돌풍이 불더니 아마도 그때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가지들이리라.

880봉과 940봉을 넘을 무렵 트랭글을 처음으로 켰다. 무려 4년 만에 트랭글을 켜고 산행을 하는 셈이다.

사두봉으로 오르는 길은 낙엽이 많이 쌓여 있고 정맥답게 오른쪽과 왼쪽은 모두 급격한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다. 오래 전 김제 모악산 등산 시에 김일성 선조묘를 답사했는데, 양쪽이 급한 경사지를 이룬 산맥 중간에 묘를 쓴 것이 인상적이었었다. 명당을 찾는 심리 때문인지 산행 중간 중간에 가끔씩 묘지가 눈에 띈다.

사두봉을 1.7km쯤 남겨 둔 940봉에는 경사진 무대 같은 장소를 설치해 놓았다. 그 아래로는 멀리 백두대간이 펼쳐져 있고 저 멀리로는 지리산 연봉이 아스라이 보인다.

3시경 960봉을 지나 3시 20분쯤 사두봉에 도착하였다. 사두봉에는 정상석은 없고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수직 팻말이 있는데 전일상호신용금고에서 세운 것이다. 1014.8m라는 높이 표시는 다 지워진 것을 매직 등으로 다시 써 놓았다. 행동식으로 가져간 곶감을 먹고 수분을 보충한 다음 다시 길을 떠난다. 정상을 막 지나니 조릿대 군락이 양쪽 등산로에 꽉 들어차 있다. 백두대간 산행시에 참나무 군락처럼 열병을 하고 있는데 키는 작지만 밀생하고 있어서 마치 난쟁이 병사들이 도열해 있는 느낌이다.

사두봉에서 882봉으로 내려가는 길은 험하지는 않지만 낙엽이 많이 남아 있어서 조금 미끄럽고 등산화에 자주 걸린다. 원래 낙엽은 그해 썩어야 하는데 산성비가 내리는 통에 미생물들이 다 죽어서 잘 썩지 않는다고 한다. 200년 후에는 200℃의 뜨거운 황산비가 내려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고 얼마 전 타계한 스티븐 호킹 박사가 예언했다는 내용이 생각나 뒷골이 따끔하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백두대간과 정맥, 기맥들을 우리 후손들도 천대만대 즐겨야 할 터인데...지금이라도 조금 더 덜 먹고 덜 즐기더라도 모든 화석에너지를 친환경에너지로 바꾸고, 지속 가능한 문명을 우리의 전략목표로 삼아 전 인류가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세끼 보리밥에도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물질과 문명이 행복의 열쇠는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882봉에서 750봉까지는 20분도 안 걸렸고 곧이어 바구니봉재에 이른다. 바구니봉재는 승계 쪽에서 방화동 쪽으로 넘어가는 작은 재인데, 주로 마을 사람들이 이용했을 것 같은 아담한 재다. 우리 유행가에 보면 유독 재를 소재로 한 노래가 많은데, 우리 조상들이 재를 넘어 이별과 만남을 이어갔기 때문에 노래가사에 그 한이 남아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바구니봉재는 숲속 오솔길 같은 단아한 재로서 이 재를 넘다보면 “산길을 간다, 말없이. 호올로 산길을 간다”라는 가곡이 나올 만하겠다.

바구니봉재를 지나니 오른쪽은 온통 벌목을 해놓아 산이 마치 옷을 벗은 모양이다. 산을 지나는 내가 나신이 된 듯이 부끄럽다. 역시 산에는 나무가 있어야 산답다. 왼쪽 사면에는 멀리 동화호가 보이고 산 계곡 사이에는 산벚꽃이 아직 하얗게 산을 물들이고 있다. 내 나이가 아직 꽃피는 유소년이던 시절 불갑사로 봄 소풍을 갈 때쯤이면 항상 산벚꽃들이 온 산을 휘감아 피곤 했었다. 어느덧 가을로 향하는 연치가 되고 보니 봄날의 그 기억들이 아지랑이처럼 강변에서 하늘로 치솟던 종달새 날개 짓과 함께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이제 막 순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두릅이 꽃송이처럼 예쁜 길을 따라 720봉을 지나 690봉으로 간다. 사실 690봉은 봉우리가 아니라 그냥 등산로에 불과하다. 다만 여기서 직진하면 안되고 완전히 우측으로 꺾어 산 옆구리로 난 하산로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6시경 690봉을 지나니 급히 수분령으로 떨어지는 등산로가 나온다. 수분령 쪽에서 반대로 올라오려면 땀깨나 솟아야 할 정도로 경사가 심하다. 20분쯤 하산하니 원수분령이라는 도로가 나오는데, 정맥은 위 도로를 넘어 원수분 쪽으로 가다가 신무산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원수분령에서 차를 주차해 둔 수분령 휴게소까지는 200여m 되는데, 수분령 휴게소 뒤쪽의 산은 아무래도 정맥이 아닌 것 같다. 장수 택시기사님께 전화로 물으니 수분마을 쪽으로 직진했다가 신무산 쪽으로 방향을 잡으라고 알려 주신다. 5시 30분에 수분령 휴게소에 도착하여 광주로 돌아오는 길에 올랐다. 다음 주는 변호사회 등산동호회와 함께 3구간을 종주할 예정이다./글·사진=강행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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