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월요아침
나선희 스피치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의 남도일보 월요아침-질문합시다

질문합시다
나선희(나선희 스피치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나선희
 

인터넷 뱅킹 공인인증서 갱신을 하느라 몇 날을 낑낑댔던가. 성질 버리는 줄 알았다. 유효기간 만료 때마다 수년 째 해오던 일이건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다 에라, 직접 부딪쳐보자며 은행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은행에서 들은 답은 다시 온라인으로 가라는 것. 공인인증서 갱신은 콜 센터와 통화 후 컴퓨터 원격제어로 해결하란다. 사무실로 돌아와 콜 센터와 연결하기 전, 컴퓨터 앞에서 다시 한 번 시도해보았지만 실패했다.

“무슨 일이시죠?” 한숨 소리와 거칠게 두들기는 자판소리가 들렸는지 젊은 직원이 쫓아왔다. 이때부터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내가 다 해봤다는데도 젊은 직원은 처음부터 시도했다. “그거 내가 백번은 해봤다니까!” 다 소용없다고 외치는 사이 직원은 정말 소용없음을 확인했다. “내가 뭐랬어, 안 된다 했지!” 잠시 갸우뚱하던 직원이 처방을 내렸다. “제 컴퓨터로 가시죠.”

노후한 컴퓨터가 문제였다. 젊은 직원의 젊은 컴퓨터로 옮겼더니 순조롭게 해결된 거다. 직원의 원인 분석은 오래된 컴퓨터에겐 날로 진화되는 은행의 보안프로그램과 호환하는 것이 버겁다는 것. 아날로그 세대에겐 보이지 않는 것을 IT 세대는 찾아냈다. 여하튼 수 십 시간을 낑낑대던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체증이 내려가는 듯 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대? 귀신이네?” 진즉 이 젊은 고수(高手)에게 물어볼 걸, 시간낭비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성인이라면 난관에 맞닥뜨리게 되더라도 혼자서 헤쳐 나가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공부도 마찬가지 아닌가?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도 해답부터 들춰보거나, 누군가에게 답을 구하면 절대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귀가 따갑게 들었다. 그때부터 길들여졌을까? 문제는 누가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자서 풀어나가는 편이었다. 임경신 작가는 “가만히 웅크리는 시간은 필요하다. 혼자 조용히 풀어내는 힘이 없으면 마음의 연륜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다.”라고 했다. 공감이 되어 형광펜으로 밑줄 긋기만으로는 아쉬워 별표 세 개와 당구장 표시, 그리고 수첩에 메모까지 해뒀던 문구다.

삶은 수학 문제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를 던져준다. 수학문제는 정답이라도 있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앞 둔 어른은 당황스럽다. 책임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있기에 더욱 버겁다. 어떤 방식으로든 결론을 내야하기에 때로는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한다. 실패는 반복되더라도 끝이 좋으면 경험이 된다. 실패를 통해 잘되지 않은 1만 가지 경험을 얻는다지 않는가. 이것이 시간이 많이 걸려도 혼자 풀어내야하는 이유이다.

지난 연말 몸이 아파 보름에 걸쳐 치료를 했다. 방치하면 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엄포로 독한 약을 마다않고 복용해 완치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미용실에 갔는데 십년지기 단골 헤어디자이너의 한마디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몸이 많이 안 좋으셨나요?” 머리를 자르러 온 게 아니라 사주 내지는 신수를 보러 온 줄 알았다. 머리카락만으로 건강상태를 감지한 고수의 예리함에 감탄사가 절로 났다.

“나 도사”라는 별명을 얻은 나도 마찬가지다. 말을 업으로 삼다보니 목소리만 들어도 얼추 성격을 맞힌다. 또 상대의 언어습관이나 표정만으로 직업을 알아채는 식이다. “말”과 함께 보낸 시간과 비례하여 분야의 초능력을 발휘한 거다. 세상의 초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온다. 경험은 전문가를 만들고 전문가는 훌륭한 판단을 이끈다. 노인이 갖고 있는 지식은 도서관의 책보다 많다(영국 속담),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아프리카 속담)고 한 것처럼 경험과 경륜은 가치가 있다.

하지만 속도가 경쟁의 도구가 되어버린 시대이다. 경륜이라는 스펙만을 믿고 웅크리고 있다가 속도에서 뒤처질 수도 있다. 나이 들었다고 내가 도서관입네 에헴 하고 있는 사이 IT세대에게 추월당하기 십상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웅크리고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는 안 된다.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질문해야 한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성끼리 협업해야 한다. IT와 아날로그의 경험이 손잡으면 지혜를 끌어낼 수 있다. 지혜는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한다. 최신 컴퓨터로 옮겨가 문제를 해결했기에 인터넷 뱅킹이 수월해졌다. 2019 기해년, 술술 잘 풀리고 싶다면 질문합시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나선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