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2장 선사포 첨사 <255>

정충신은 해전에는 익숙지 못했다. 가도의 해적들을 섬멸하려면 해상훈련과 수병 조련이 급선무였다. 아직 병사들의 전력을 파악하지 못했으므로 그는 충분히 조련시킨 다음 적을 소탕하고 싶었다. 그는 중군장을 불러서 일렀다.

“나는 보다시피 육상전, 유격전, 정탐전에 강하다. 바다에서 싸우는 것은 경험이 부족하니 시간을 두고 훈련을 거친 뒤 소탕전을 벌이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정 첨사, 이순신 장군처럼 해상전을 벌이는 것이 아닙니다. 가도의 골짜기에 명나라 패잔병들이 우굴거리고 있소이다. 바로 육상전입니다. 예로부터 요동반도 돌출부에서 명나라 군사나 민간인들이 가도로 흘러들어와 살면서 섬 주민을 괴롭히고, 평안도 육지부로 침투해 노략질을 하던 자들이온데, 그들 역시 배를 타고 육상에 오르긴 하지만 해상전을 치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바다에서 맞서 싸우지 않았으니 그자들도 해상전 경험이 없지요. 놈들은 싸움다운 싸움을 해본 적이 없으니 쳐부수면 금방 궤멸될 것입니다.”

“알았다.”

며칠 후, 정충신은 병력의 반을 수리한 병선에 각기 승선시켰다. 그는 잠시 9대조인 고려조 제독을 지낸 정지 장군을 생각했다. 해신인 정지 할아버지가 나의 길을 열어주시겠지... 그는 선상에서 기도한 뒤 각 부장(副將)을 불러 모았다.

“1진과 2진은 놈들의 본진인 동강진을 치라. 3진은 정박해있는 해적선을 노리라. 4진과 5진은 나를 따르라. 이 모든 것은 산 정상에서 봉화불로 신호를 줄 것이다. 철저히 따르되 적 진지를 일격에 제압해야 한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요?”

“그렇다. 그래서 작전명은 ‘번갯불에 콩굽기’다.”

깊은 밤, 때는 이른 봄이다. 아직 쌀쌀한 날씨지만 수리한 중맹선과 소맹선은 날렵하게 선사포 앞바다를 미끄러져 나갔다. 정충신은 부장들에게 신호체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을 재삼 강조하고 소리없이 가도에 상륙해 병력을 각기 배치했다.

삼경이 되었을 때, 가도의 산 정상에서 봉화불이 올랐다. 그와 동시에 바닷가에 정박한 해적선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정충신은 공격조에게 명령했다.

“진격하라!”

그러자 각 부장이 부대원들에게 명령했다.

“일격에 부숴라!”

본진의 습격을 받은 해적들이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동강진으로 몰려가 배를 타려고 했으나 이미 배는 불길에 싸였다. 이때 1진과 2진이 이들을 덮쳐 칼로 목을 베거나 죽창으로 가슴을 찔렀다. 깜깜한 밤중이라 화승총은 피아 구분이 어려워 사용하지 않았다. 철두철미 백병전으로 부숴버렸다.

날이 밝자 가도의 바닷가에는 불에 탄 적선의 파편들이 어지럽게 밀려와있고, 죽은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그 숫자가 백이 넘었다.

그 사이 숨죽이고 있던 섬 주민들이 하나같이 바닷가로 나와 정충신 군 대오 앞에 모였다.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있습니까. 내 배 창사가 후련하오이다!”

“정충신 첨사 나리,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젊은 첨사 어른이시라 역시 다르군요.”

“이제는 발뻗고 살게 되었나이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눈물로 감사를 표시했다.

정충신이 짚덤불을 묶어놓은 단 위에 올라 일장 연설을 했다.

“가도 섬주민 여러분, 그동안 여러분을 보살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이제 안심하십시오. 해적들, 명나라 패잔병 놈들에게 더 이상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하기 바랍니다. 가도에 우리 병력 1백을 주둔시킬 것입니다. 바다를 지킬 것입니다. 가도와 탄토, 육지부에 봉화불로 위기상황을 알리도록 할 것이니, 여러분이 위기에 처하면 한두 시각 안에 응원부대가 가도에 상륙할 것입니다. 해상로가 열리니 여러분이 생산한 해물은 육지부로 수송이 되어서 먹고 살 형편이 나아질 것입니다.”

와-, 하고 함성이 일었다. 이때 한 부장과 병사 둘이 콧수염이 여덟팔자인 사십대 장정을 끌고 왔다.

“이 자가 해적 두목입니다. 비겁하게 숨어있는 것을 발견해 생포해 왔습니다.”

그러자 섬주민들이 일제히 울부짖었다. 저놈 죽여라! 저놈이 우리 딸을 데려갔다, 저놈이 식량과 소금과 소를 끌고 갔다, 내 할아비를 죽인 놈이다!....

“꼭 죽여야 하겠습니까?”

그러자 일시에 주민들이 죽여라, 죽여라! 하고 외쳤다.

“죽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오.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오.”

“아니오, 당장에 쳐죽여야 해요!”

얼마나 원한아 사무쳤을까, 주민들이 계속 죽여라! 하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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