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2장 선사포 첨사 <257>

소실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럴 듯도 하였다. 군사 문제라고 하면 봉화라는 신호체계를 이용해야 할 것이다. 그것으로 적병들의 동태와 침략 상황을 알리고, 군사의 군량미와 부식(副食) 상황도 서로 교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실 생각은 어떠하신가.”

“병사(兵事)는 아니고, 중국 사신이 온 것 같습니다. 영감이 중국어에 능통하니 통변(通辯)하면서 사신의 청을 적당히 주물러 달라는 요청인 것 같아요.”

듣고 보니 그럴 사했다. 그러나 기분 나쁜 것이 있다. 정충신이 퉁치듯 말했다.

“영감 영감 하지 마시게. 내가 나이를 먹었으면 몰라도 이제 고작 스무살 언저린데 영감 영감 하니 진짜로 내가 영감같이 늙어버린 것 같다고. 안그래?”

“영감은 높임 말입니다. 젊은 청년이 과거 급제해서 지방 수령으로 부임해가면 관아의 집행관들이 영감이라고 떠받들지 않던가요.”

“듣기 싫어. 그런 건 너무 권위적이야. 앞으로는 나한테 자기야, 라고 해.”

“간지럽사옵니다.”

그 큰 덩치에 수줍게 웃는 품이 순진해보였다. 그녀가 정충신을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평양성은 격식을 많이 차리니 의복부터 단정하게 하고 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장롱을 열어 진다홍 운문대(雲紋臺) 단첩리(緞帖裏)를 내놓았다. 토홍색(土紅色) 면포의 저고리와 두루마기다. 여기에 강무(講武)나 행행(行幸) 때 주황색 초립(草笠) 위에 깃을 꽂고 나가면 멋진 청년 무사의 행색이 된다. 그래서 토홍색 면포의 단첩리를 입으라는 것인데, 오피화(烏皮靴)화까지 내놓으니 융복(戎服)으로서 그럴사했다. 조선조 초기엔 사대부가 이런 단첩리를 입었으나 선조 말년부터는 당상관급 이상의 정복으로 흑단령(黑團領)을 입었다.

정충신은 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입지 않으려 했지만 하양 허씨가 한사코 강권했다.

“자고로 의복이 날개라고 했지요. 의복으로 사람 됨됨이를 가름하는즉 입고 가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가슴이 앞으로 내밀어지고, 권위가 세워지게 됩니다. 나이 젊을수록 그래야 합지요.”

그리고 조그만 궤를 열더니 공작새 꼬리털로 꾸민 갓벙거지에 번쩍번쩍하는 밀화(蜜花) 패영(貝纓)을 덧댄 총립을 내놓고 쓰라고 한다. 정충신이 받아서 머리에 쓰니 모양이 한결 달라졌다. 소실이 벽장에서 도금한 기다란 칼집을 내놓았다.

“이것을 차세요.”

“이것은 군관으로서 쓸만하군.”

칼집에서 칼을 빼보니 길이가 삼척이었다. 칼날은 손을 대기만 하면 베질 것같은 시퍼렇게 날선 보검이었다.

“어떻게 이런 것들을 준비했소.”

“나는 군인의 처첩이 되기로 마음 먹고 소녀 시절부터 준비했답니다. 내 손으로 꼭 장수를 만들려구요.”

“왜 장수의 처첩이 되기로 했소?”

“차차 말씀 드리지요.”

그렇게 말하고 이번에는 호리병을 내놓았다.

“가면서 목이 마르면 드시어요.”

“이건 또 뭐요.”

“생강차 올시다.”

“아니, 선사포엔 생강이 날 리가 없는데?”

“제가 도성에 있을 때 생강을 구해 말려둔 것이어요. 이것을 다려 먹으면 면역력이 강화되어 객지 고뿔이 걸리지 않지요. 여성에게 좋으니 남성에게도 좋습니다. 몸을 따뜻하게 보해주니까요. 머리를 맑게 하고 심장을 튼튼하게 하니 배짱이 생기지요. 생식기능도 좋아져요. 소첩도 아이를 생산하고 싶어요.”

정충신은 “이 여자가 자고 싶어 환장했군”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실이 조그만 보따리를 하나 내밀었다.

“말린 인삼과 생강입니다.”

자별히 생각한다고 여기고, 밖으로 나와 말을 타니 소실이 다시 말했다.

“명나라 사신이나 장수가 왔다면 말을 가지고 왔을 텐데 그들을 꼼짝 못하게 하려면 말을 묶어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충신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정충신이 처음에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으나 다 듣고 나서는 미소를 지었다.

“알겠소. 내 다녀오리다.”

이틀을 달리니 평양성이었다. 비장청(裨將廳)에 이르러 정충신이 큰 소리로 외쳤다.

“선사포 첨사 정충신, 군령을 받잡고 대령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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