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3)수분령-서구이치 구간(2018. 4. 21)
자고개 올라서니 견훤 애환 깃든 합미성이 눈앞에
후백제군 군량미 보관…1천100년 전 흔적 그대로
금강·섬진강 발원지 뜬봉’서 시원한 약수로 목축여
팔공산 정상 오르면 사방 툭 트이고 바람도 살랑살랑
장수읍 감싼 산맥 주변 엘레지·싸리꽃 등 봄 내음 물씬

금강과 섬진강 발원지인 뜬봉샘 주변 돌에 새겨진 글.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의 애환이 깃든 합미성과 필자. 1천100년전 산성 흔적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전북 장수읍을 감싸고 도는 호남정맥 등산로 주변에 피어난 엘레지 꽃.
전북 장수읍을 감싸고 도는 호남정맥 등산로 주변에 피어난 조팝나무 꽃
팔공산 정상에 올라선 필자. 정상에는 철탑과 함께 시멘트 포장이 된 공터가 있을 뿐 흔한 정상석 하나 없지만 개활지라서 사방이 툭 트이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와 지친 심신을 달래 준다.

오전 8시, 광주지방변호사회 등산동호회와 함께 호남정맥에 도전하기 위해 법원 앞 광장에서 만났다. 같이 가기로 한 회원 중에서 송현규 선배는 보이질 않았지만, 신 대장군의 친구인 김경식 경위가 참가하여 총 6명이 두 차로 나누어 출발하게 되었다.

9시 10분경 보통 종주자들이 들머리로 삼는 수분령이 아닌 원수분 마을 근처의 뜬봉샘 테마공원에 차를 세우고 뜬봉샘을 목표로 산행을 시작했다. 원래 호남정맥은 수분마을 중간에 난 도로를 거슬러 바로 신무산으로 이어지는데, 수분령 휴게소가 유명하다 보니 수분령 휴게소에서 도로를 횡단하여 오르는 새로운 코스가 생겨버린 셈이다.

금강의 발원지인 뜬봉샘을 지나치기가 아까워 신무산을 옆에서 보면서도 발길은 직진하여 20여분 만에 뜬봉샘에 도착하였다. 뜬봉샘은 커다란 바위 틈에 있는 매우 아담한 샘인데, ‘뜬봉샘’이라고 새겨진 2개 가량의 큰 표지석이 서 있고 바위 아래에는 ‘금강 천리 물길 여기서부터’라고 새겨져 있다.

수분령을 기준으로 북쪽 사면으로 떨어지는 물은 금강을 이루고, 남쪽 사면으로 떨어지는 물은 섬진강 물이 되니 지명이 딱 들어맞는다고 하겠다. 백두대간 종주할 때는 삼수령을 지났는데, 떨어지는 물의 위치에 따라 남한강, 낙동강, 남대천으로 흘러가고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이 근처에 있었다.

뜬봉샘의 시원한 약수를 한 바가지 마시고 신무산을 향하여 길을 재촉한다. 전날 서울에서 밤 12시 넘어서 돌아오는 통에 잠이 부족해서 그런지 오전 내내 다리에 힘이 없다. 배준영 총무와 제일 늦게 신무산 정상에 다다르니 벌써 10시 50분이 넘었다.

신무산은 장수읍 용계리와 수분리, 석천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전설에 의하면 용을 승천시키려고 신선들이 신무산에서 춤을 추었는데 용계리와 승천리 사이의 넓은 들 가운데 사는 타관신이 훼방을 놓아 용이 승천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렸다고 한다. 근처에 견훤의 후백제군이 군량미를 보관했다는 합미성이 있고, 당시 후백제군이 신무산에 허수아비를 세워두고 적을 유인하여 무찔렀다고 하니 견훤이 승천하지 못한 용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신무산에서 멀리 보이는 자고개 까지는 1.68km 정도인데 계속해서 심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내려가는 산길에는 아직 덜 진 산벚꽃이 마지막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11시 20분경 자고개에 도착하였는데, 벌써 체력이 방전되려 한다. 이때부터 트랭글을 켰는데, 오늘 산행시 최저 높이가 682m인 것으로 보아 자고개가 해발 682m인 모양이다. 장수군 전체가 평균 700m 이상 고원지대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자고개에서 꽤나 가파른 경사를 20여분 오르니 시골의 담벼락처럼 잘 쌓은 성벽이 나타난다. 합미성은 길이는 300여미터로 길지는 않으나 1,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일부 성벽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조상들이 얼마나 공을 들여 쌓았는지 짐작이 간다. 합미성 뿐만 아니라 전북의 무주, 진안, 장수 등지에는 야산에도 산성들이 많은데, 삼국시대 때 접경지역이라서 많은 전쟁이 있었고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셈이다.

합미성 담벼락을 따라서 가다보니 성이 무너진 곳이 나오는데 등산로는 그 곳으로 나 있다. 성 밖으로 나오자 ‘합미성(合米城)’을 알리는 큰 안내판이 서 있다. 안내판에 의하면 합미성은 후백제(A.D. 892-936년) 때 쌓은 성으로 둘레는 약 300m, 성벽의 높이는 안쪽이 4.5m, 바깥쪽이 1.5m로서, 원래 성내에는 병사들이 식수로 사용하기 위한 급수관이 있었다고 한다. 1,100여년 전에 급수관을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정맥 길은 합미성을 지나 거의 정북 방향으로 북진한다. 장수읍을 호남정맥이 항아리 모양으로 감싸며 북진하는데, 오른쪽에는 장수읍과 그나마 얼마 안되는 논밭들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온통 높은 산과 구릉들이 펼쳐져 있다. 길가에는 제비꽃을 닮은 분홍색 꽃이 피어 있는데 꽃송이가 뒤집힌 우산모양이다. 이게 엘레지꽃인 줄은 나중에야 알았다. 싸리꽃도 한창 피어나고 있는데, 찬찬히 보니 산벚꽃보다 하얗고 순결해 보인다. 야생화는 보면 볼수록 꽃송이 안으로 빨려 들어갈 만큼이나 매력적이고 고혹적이다.

지도에 1013고지로 표시된 산봉우리를 우측으로 돌아서 오늘 산행의 주산인 장수 팔공산(1,157m)을 향하여 산길을 오른다. 29℃를 넘는 여름 날씨에 숨이 턱턱 막이고 허기가 져서 발걸음이 무겁다. 배준영 총무는 아침을 안 먹었다더니 나보다도 더 처져서 힘을 못 쓰고 있다.

1시가 넘어서 팔공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정상에는 철탑과 함께 시멘트 포장이 된 공터가 있을 뿐 흔한 정상석 하나 없다. 다만 개활지라서 사방이 툭 트이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와 지친 심신을 달래 준다.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고 100m 정도를 우측으로 가니 헬기장이 나온다. 적당한 그늘이 없어서 그나마 바람이 잘 통하는 헬기장에 배낭을 풀고 일행들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배 총무가 김밥을 잔뜩 사와서 도시락을 안 싸와도 될 뻔했다. 밥 한그릇을 뚝딱 비우고 막걸리까지 세 잔 걸치니 오전 산행의 피로가 말끔히 가신다. 식사하면서 회의결과 서구이치(동네 주민들은 서구리재라고 부르는데, 일제시대에 한자로 지명을 바꾸면서 사구이치로 작명한 것 같다)로 하산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정맥을 이어가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단독으로라도 오계재까지 가고 싶지만, 마침 컨디션도 좋지 않고 고향에서 초등동창생들 모임도 있기에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만일 끝까지 가는 것으로 고집을 피웠으면 등산동호회 회장직에서 탄핵당할 뻔 했다는 신 대장군의 농담이 귀에 거슬리는 게 아니라 반갑다.

점심을 느긋하게 먹고 2시쯤 헬기장을 출발해 서구리재로 향하는 내리막 능선 산길에 다시 접어들었다. 배가 든든해서인지 오전의 숨가쁨은 사라지고 발걸음이 훨훨 날아가는 듯 가볍다.

서구리재로 내려오는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어서 위험한 곳이 전혀 없다. 20여분을 내려가다 보니 장수읍 주민들로 보이는 청년들이 대여섯명 산을 오르고 있다. 모두 평상복에 생수 1병씩을 들었는데 다들 비만한 것이 눈에 띈다. 1달 전 암태도 승달산 산행 때 산에서 내려오던 초등생들이 다 작은 강호동을 닮아서 폭소를 터뜨린 기억이 새롭다. 우리 때는 온통 새까맣고 빼빼마른 애들이 농촌이나 섬소년들 이었는데, 세상이 바뀌어도 너무 바뀐 것 같다.

30분이 안되어 서구리재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이르렀다. 불과 150m 아래에 차도가 있다고 하여 급히 장수개인택시 기사님께 전화를 드리고, 갈림길에서 10여분을 쉬었다가 도로 쪽으로 내려 왔다. 장수 쪽에서는 팔공산 등산로 초입을 이곳으로 많이 잡는지, 주차장과 팔각정, 화장실 등이 갖춰진 시설이 도로 옆에 잘 정비되어 있다. 오늘은 10km가 채 못 되는 산길을 걸었으나 금강 발원지인 뜬봉샘 샘물도 마시고, 신무산과 합미성도 잘 보았으니 아쉬울 것은 없는 산행이었다.

장수의 밭들이 온통 사과꽃으로 하얗게 물들어 있는 풍광을 보며, 사과밭떼기 장사에 나서볼까 하는 귀 얇은 상상을 하며 택시기사님과의 긴 대화로 하루 산행을 마무리 지었다./글·사진=강행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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