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2장 선사포 첨사 <258>

비장이 쪼르르 달려나왔다. 비장은 감사나 절도사를 따라 다니는 핵심 막료다. 대개는 눈치로 때려서 먹고 사는 관료인데 이들의 행패가 심해 백성의 원성이 자자했다. 감사가 민정에 대한 염탐을 위임하기도 했는데 본인이 감사인 양 행세하며 여차하면 백성을 치도곤 했다.

정충신을 맞이하는 비장도 무슨 떡고물이 없나 하고 그의 위아래를 훑는데, 정충신은 아예 그를 무시하고 선화당으로 들어섰다.

“저 씨발새끼, 겁대가리없이 날 무시하고 가다니...”

팽 비장이란 자가 씨부리며 칵 가래침을 땅바닥에 뱉었다. 그러나 범접할 수 없는 어떤 권위때문에 그는 몇걸음 따라 나서다 제 자리로 돌아왔다. 첨사라도 옷차림부터가 남다르고, 의젓한 폼이 예사 첨사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괜히 주눅들었다. 그러자 일순간, 저 놈에게 붙자는 마음이 생겼다.

정충신이 선화당으로 들어서니 집무 중이던 평안감사가 놀라 그를 반겼다.

“아이쿠 어서 오시게. 급한 일이 있으면 부른다고 하고 불렀는데 빨리 왔군. 역시 젊은 군관이라 다르이.”

평안감사가 일보던 관비(官婢)들을 물리치고 단 둘이 앉았다.

“정 첨사, 큰 일 났네. 중국 사신이 한양을 다녀오는 길에 평양감영에 들렀는데 은 만냥을 내놓으라 으름장놓지 않는가.”

“뭐라고요? 은 만냥이라고요?”

“그러게 말일세. 은 만냥이라면 평양성민 고혈을 짜내도 못만들 거금일세. 하지만 어쩌겠나. 들어주지 않으면 내 모가지가 뎅강 나갈 판인데. 어찌하면 좋겠는가.”

“개새끼들....”

정충신이 화를 냈다.

“화를 내가지고 해결될 문제가 아닐세. 그자들 미인계를 써도 기생들 실컷 농락하고는 다음날 입 싹 씻고 손을 내미네. 미치고 환장할 일일세.”

“그자가 타고 온 말이 어디 있습니까.”

“마방에 있지 어디에 있겠나.”

“말을 태워서 쫓아버리십시오.”

“쫓다니? 어떻게 내가 그런 짓을 할 수 있나. 어떤 화가 돌아오라고!”

“그런 새끼들은 국경 밖으로 쫓아부러야지요.”

“그러면 내 모가지가 뎅겅 나간다니까.”

“그러면 내가 쫓아버리겠습니다.”

정충신이 중국 사신이 묵고 있는 객관으로 달려갔다.

“야 이 씨발놈아! 평양감영이 니 호구냐? 당장 안꺼지면 이 보검으로 내 배때지를 쑤셔뱍아버릴 것이다. 당장 꺼져!”

이건 순전히 날벼락이다. 사신이 기생을 끼고 비몽사몽간에 잠들어있는데 젊은 군관이 문 밖에서 자르르 빠진 토홍색 면포의 운문대 단첩리를 입고 햇빛에 번쩍번쩍 빛나는 금박 보검을 휘두르고 서있으니 놀라자빠질 일이었다. 중국 사신은 한양에서 왕자가 쫓아온 것으로 알았다. 그러지 않고는 저런 배짱을 내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는 둥 마는 둥 하고 밖으로 나오더니 마방으로 달려갔다.

“당장 꺼져! 여기가 어디라고 주접떨고 지랄이여? 전라도 곤조 한번 보여주까? 씨발새끼, 확 뽀사부린다!”

그가 보검을 땅바닥에 내려치고 으름장을 놓았다. 중국 사신이 겁에 질려 말을 타고 달리는데 평양성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좃나게 찌라시 놓구만? 꼴 좋다. 하지만 평안감사가 어쩌려고 저러지? 나종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런데 달리던 호마가 한 곳에 이르러 갑자기 멈춰섰다. 호마가 멈추니 사신이 사색이 다 되었다.

“가자, 이놈아! 어서 달려! 너는 천리마 아니냐!”

그러나 호마가 허공에 머리를 쳐들고 흰 이를 드러내며 히히힝 울었다. 호마의 앞에는 암내가 난 말이 있었다. 나무에 묶인 암말도 늠름한 호마를 발견하고 발로 흙을 긁으며 궁둥이를 들이댔다.

“어서 가자 이놈아!”

사신이 외쳤으나 히히힝 웃던 호마가 땅이 꺼져라 날뛰더니 사신을 톡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재빨리 암말을 향해 돌진했다. 벌써 그는 기다란 몽둥이 같은 물건을 빼들어 암말을 올라타고 있었다. 사신은 다리가 분질러졌는지 일어나지도 못하고 끙끙 앓으며 호마를 향해 뭐라고 씨부렁거렸으나 호마는 자기 할 일에만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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