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미관을 위해 간판 정비 시급하다
김성식 조선이공대학교 교수

새해의 시작과 더불어 새로운 소망 한 가지를 가져보았다. 진흙탕 싸움에 진절머리가 난 정치판에 대한 기대도 아니고 갈수록 더 천박해지는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닌 소박한 일상의 희망이다. 이러한 마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보거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하는 아쉬움에 대한 자성의 참회이기도 하다. 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포장이 안 된 흙길을 걷는 한가함을 가져보려고 한다. 지척의 송광사나 선암사를 즐겨 찾는 이유 중 하나가 자연의 흙길을 걸으며 사색을 하고 잠시의 여유를 통해 힐링의 상쾌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나 제주의 올레길 처럼 먼 곳의 흙길이 아니더라도 내 주변 가까이에 있는 흙길을 걸으며 주변을 살펴보고,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며 뒤를 돌아볼 수 있는 한가함이 삶을 더욱 성숙시키고 무르익게 하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더 큰 소망은 멀리 가지 않더라도 내가 사는 도시를 걸어 다니며 생활하는 것이다. 도시건설계획자인 제프 스펙은 그의 저서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walkable city)’에서 ‘걸을 수 있기 위한 보편적 조건’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걷는 것에 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유용성, useful), 둘째는 보행자가 자동차로부터 실제로 안전할 뿐만 아니라, 충분히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하고(안정성, safe), 셋째는 ‘내 집의 일부’로 인식할 수 있는 건물과 가로 풍경을 통한 편안함(comfortable)이며, 넷째는 친숙하면서도 특색 있는 건물들로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 걷는 것이 즐거워야 한다(흥미로움, interesting)는 것이다. 특정 장소 또는 지역에서 ‘걷기’가 적합한지 또는 얼마나 좋은지를 알려면 이 네 가지 조건이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광주에서 이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거리는 어느 곳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이다 할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시내를 다 걸어보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아직 광주에 그런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 광주도 안전하게 걷기 편한 도시, 차보다 사람이 중심인 도시, 걷는 동안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도시, 골목이 있고 마을의 커뮤니티가 살아있는 그런 도시를 만들어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공디자인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 도시의 모습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미적 감각이나 수준을 가늠할 수 있기에 예술의 도시란 이름에 걸맞은 공공디자인이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먼저 적용되어야 할 곳은 무질서, 혼란, 부조화, 불균형으로 인하여 인간 스스로의 활동 공간을 파괴하고 있는 거리의 옥외간판이라고 생각한다. 도시환경미화 차원에서 간판에 대한 재정비가 절실한 상태이다. 광주의 간판문화는 가히 시각과 공간 공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형편인데, 특히 목포 방면에서 광주로 들어오는 진월동 초입의 건물과 주차 빌딩에 붙어 있는 간판들은 무질서와 혼란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광주로 들어오는 나들목에 설치된 무질서한 옥외간판을 보고 광주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게 될 것인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옥외간판은 상품에 대한 광고뿐만 아니라 특색 있고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도시환경을 만들기 위해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지만 오늘날 도시가 대형화되고 화려해짐에 따라 간판의 형태나 색채의 부조화로 인해 보는 이의 시각을 필요이상으로 자극함과 동시에 도시의 미관을 해쳐 간판의 목적을 상실하는 결과를 보인다. 간판의 홍수 속에서 무분별한 영어의 남발과 업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으로 화려하게 자신만의 간판을 내걸기 위한 뜨거운 경쟁은 도시 전체의 경관을 악화시키고 심각한 시공간 공해가 되어 외관 디자인을 훼손하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설치가 아닌가 싶다.

외국의 경우 건물의 외관을 조화롭게 하고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간판의 규정이 매우 까다롭고 설치도 엄격하다. 맨하튼의 경우 조망 확보를 위해 스카이라인을 정하고, 뉴욕은 옥외광고물의 위치·크기·높이 등을 규제하여 옥외광고물 설치목록을 시건설국에 제시하고 관련규정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문화관광부가 삶의 질을 개선해 나간다는 차원에서 간판 개선 사업을 중점 정책으로 시행하고 있듯이, 광주시 또한 시민의 삶의 질을 개선과 아름다운 도시이미지 창출을 위해서 광고물 정비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건물별로 간판 총면적에 제한을 두는 ‘간판 면적 종량제’를 적극 도입하고, 조례 제정을 통해 광고물을 건물 면적과 대비해 제한하거나, 광고물의 모양·크기·색깔·설치방법 등을 적극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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