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3장 행주대첩과 전라도 병사들<263>

이여송이 금파·파주·문산 진지에 눌러있는 사이 조선군 주력도 개성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었다. 명군 후미에 떨어져 행동했으므로 조선군의 손실을 막을 수 있었고, 명군과 왜군이 붙어 쌍방 전력이 쇠잔해질 때 조선군이 들이닥쳐 왜군을 친 전술 또한 주효했다. 이 작전은 정충신의 지략에서 나온 것이었다.

김명원 도원수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지휘부로 달려온 정충신을 싸안으며 격려했다.

“정충신 첨사 장하다. 정 첨사로 인하여 우리가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도원수 각하, 기뻐할 때가 아닙니다. 고니시 1번대는 한양 방향으로 진로를 잡았지만 함경도에 있는 가토 기요마사의 2번대가 양덕·맹산을 넘어 평양을 친다고 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잘 되었다. 평양으로 후퇴하는 명군이 있지 않는가. 그들과 다시 붙으면 우리가 한결 가볍지.”

“가토 군대가 평양으로 진격하지 않고 진로를 틀어 남쪽으로 내려오면 조선군은 가토군과 고니시군 사이에 갇히게 될 것입니다. 그것 또한 문제입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야. 고니시와 가토는 서로 견원지간이거든. 가토가 고니시를 돕느니 차라리 조선군을 도울 것이야. 그자들은 한번 틀어지면 적보다 더 고약하게 틀어진다. 그놈들 곤조가 그렇지.”

그 진단은 맞았다. 물러설 수 없는 쌍벽이자 경쟁자인 그들이 서로를 도울 리는 없는 것이다.

“가토 군 동향을 잔병을 이끌고 퇴각하는 이여송 부대에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명군은 물러가면서 평양을 거칠 것입니다. 거기서 명·왜가 부딪치면 평양성에 익숙한 명군이 백번 유리하지요.”

정충신의 말을 듣고 김명원은 명군사령부로 밀지를 보냈다. 그에따라 부총병 왕필적의 명군은 파주로 후퇴했다가 임진 나루를 건너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향했다. 그러나 가토 군대의 평양 진격은 소문이었을 뿐, 함경도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명군과의 벽제관 전투에서 승리한 고니시의 왜군은 조선군의 공격에 한때 주춤했으나 이여송의 휴전 수락으로 시간을 벌어 전열을 재정비하더니 조선군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조선군 병력은 행주산성으로 밀려났다.

“정 첨사, 행주산성에 전라도순찰사 권율 장군이 들어와 있다고 하오.”

적정을 정탐하고 달려온 부관 김판돌이 정충신에게 보고했다.

“뭣이라고?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에 들어와 진을 치고 있다고?”

“그렇다 하오. 왜군이 행주산성을 포위해 진격준비를 하고 있소. 조선군의 추가 병력 투입을 차단하고, 병참선도 끊어서 행주산성을 고립시킨 다음 친다는 전략이오.”

정충신은 광주 목사관에서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에 스쳤다. 권율은 친자식처럼 그를 아꼈다. 그의 재주를 높이 사서 사위인 병조판서 이항복에게 맡긴 장수다. 이치·웅치전 때 권율은 과묵과 권위로써 위엄이 있었지만 깊은 배려의 후덕으로 부하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런 지휘법은 정충신의 군사지휘 철학이 되었다.

“권율 장군에게 응원군이 절실하다고 하니 진로를 뚫어 우리가 합류해야 하오이다.”

김판돌 부관이 건의했다. 한때의 건달이 이제는 의젓한 군관이 되어있었다.

“알았다. 당장 척후병을 소집하라. 길을 뚫어야지.”

“한강 서쪽 방향은 조선군이 장악하고 있으니 그 길을 택해 합류할 수 있을 것같소이다. 우리 병력은 지금 오십 다섯이오. 인력 손실은 셋입니다.”

벽제관 전투에 참가해 병력 손실이 셋이라면 큰 희생은 아니다. 선사포 바닷가 백사장에서 창검술과 무술을 익히고, 물길도 단번에 십리를 꿸 정도로 수영을 익힌 장졸들이니 수륙 겸용 정예부대원들이었다. 그 결과 벽제관전투에서도 전과를 올린 반면 희생은 최소화했다.

야음을 틈타 길을 잡는데 왜군 초병과 기라병, 보병들이 벌판에 진을 치고 있었다. 행주산성으로 들어가는 길목과 산지를 물샐틈없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을 뚫고 권율 부대와 합류할 방도가 난감하였다. 한 곳에 머물러 대책을 숙의하던 중 정충신이 부하들에게 말했다.

“방법은 단 하나다. 한강물을 헤엄쳐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얼음이 풀렸다고는 하나 아직 강물이 차갑습니다.”

“가도 바닷물에 비하면 한강물은 온탕이다. 나를 따르라.”

정충신이 부대원을 이끌고 갈대가 무성한 한강변에 이르렀다. 솔선해서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차가운 기가 온 몸으로 파고들었으나 헤엄을 치니 견딜만 했다. 군사들이 앞서 나가는 지휘관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깜깜한 밤 중 대오가 꾸물거리며 흐르는 한강물을 따라 헤엄쳐가는 모습은 흡사 얼음 덩어리들이 떠내려가는 것 같았다. 적선의 진군처럼 소리없이 헤엄쳐 행주산성 서쪽 기슭에 도달하자, 강가 군데군데 피워놓은 모닥불이 보였다. 조선군 초병들이 불을 피우고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정충신이 강기슭에 올라 모닥불 쪽으로 다가갔다. 대원들이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누구냐?”

조선군 초병이 창을 겨누며 외쳤다. 1593년 3월초순(음력 2월중순)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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