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 어르신들 새해 시작은 ‘한글 공부’로

해남 송지면 서정마을 한글교실 어르신들로 북적

교실 막내가 73세·90세 장옥심 할머니도 ‘열공’
 

전남 해남군 송지면 서정마을 ‘한글교실’에 참여하는 마을 어르신들이 자신의 이름표를 들어 웃어보이고 있다. 이들은 해남군 늘찬배달 교육의 일환으로 이달부터 마을회관에서 한글 수업을 받고 있다. /해남군 제공

“선상님, 내가 그린 바지는 어째 반바지가 돼 부렀단 말이요?”

지난 25일 전남 해남군 송지면 서정마을 한글교실에서 ‘ㅂ’을 배우던 한 할머니의 하소연이 다른 할머니들을 폭소케 했다.

한글교실에서 공부를 시작한지 닷새째인 이날은 ‘ㅂ’을 배우는 날. 할머니들은 옹기종기 앉아 모여 ‘ㅂ’이 들어간 낱말을 찾아 색칠을 하면 바지그림이 완성되는 학습지를 풀었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그려도 그려도 바지는 안그려지고 반바지가 되고, 치마가 된다며 푸념을 쏟아냈다.

서정마을의 한글교실은 해남군의 ‘늘찬배달 교육’의 일환으로 이달부터 운영되고 있다.

늘찬배달 교육은 10명 이상의 주민이 신청하면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강사가 파견되는 제도다. 서정마을의 새해 한글교실은 마을 노인회장님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수업 참여자들은 모두 마을의 70~80대 어르신들로 73세인 정옥심 할머니가 한글교실의 막내다. 정 할머니부터 최고령자인 90세 정상엽 할머니까지 모두 12명의 어르신들이 한글교실에서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전남 해남군 송지면 서정마을 한글교실에 참여하고 있는 마을 어르신들이 김미향 강사로부터 지도를 받고 있다.

정옥심 할머니는 “젊었을때는 먹고 살기 바빠서 글자 배울 틈이 없었제”라며 늦게나마 시작한 공부에 수줍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른 할머니도 “간신히 읽을 줄만 알제 연필잡고 써보는 것은 처음이여”, “재미진 공부 하느라 올해는 농사도 못지을 판이여”라면서 연필을 놓지 않았다.

특히 할머니들이 집에서도 공부하는 모습을 손주 며느리들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가 하면 한글교실에 참여한 이후 할머니들의 일상생활에도 활기가 더해졌다.

한글교실에 참여중인 한 할머니는 “올 상반기에 한글 깨치면, 하반기 글쓰기 수업도 공부하고 싶다”며 공부에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한글교실은 일주일에 두차례 12회차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어르신들이 계획대로 ‘ㅎ’까지 배우면 간단한 단어는 읽고 쓸 수 있는 한글 기초가 마무리 된다.

수업을 지도하는 김미향 강사는 “수업이 오전 10시부터인데 9시부터 기다리시는 어르신들이 있을 정도로 열기가 높다”며 “여느 학생들 못지 않은 진지한 할머니들의 모습에 가족들의 응원도 상당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서부취재본부/이은창 기자 lec@namdonews.com·해남/이보훈 기자 lb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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