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3장 행주대첩과 전라도 병사들<266>

변이중이 제조한 화차는 200량이었다. 앞으로 100량을 더 만들 요량이었다. 기술자와 가복 30명이 동원돼 제작했는데, 이중 수십 량을 벌써 주요 군사요충지에 배치했다. 최근에는 성능 좋은 신형으로 개발한 40량을 권율장군이 북상할 때 함께 가지고 올라왔다. 권율이 고양 덕양산으로 들어온 것도 지형상 화차 이용이 용이했기 때문이었다. 이것들을 산성의 목책 뒤에 배치해 쏘아대면 왜군을 꼼짝못하게 할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화차가 지금 강 건너 양천 궁산성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소모어사란 병란이 발발했을 때 고을의 향병(鄕兵)을 모집하는 관리 아니옵니까? 그런 사람이 화차 발명자라고요?”

“그렇다. 군병과 전마(戰馬)를 모으고, 군기(軍器)를 개발·보급하는데, 이때 머리 좋은 그가 화력이 뛰어난 화차를 개발했다. 독운사(督運使)로서 군량 조달과 운송의 중책까지 맡으면서 마차를 굴리고 살피면서 신형 화차를 개발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으니 병기 기술이 날로 진보하고, 전력 또한 향상되고 있다. 그런데 그들 발이 묶여버렸다. 병기가 아무리 우수해도 실전에 배치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화차가 못건너올 적시면 대신 변 어사와 가복들을 모셔오면 되잖습니까. 행주산성에서 제작해 실전 배치하도록 해야지요. 그들 수송은 저희 부대가 맡겠습니다.”

“새 화차 제작할 시간이 있겠는가. 왜군이 쳐들어오는 것은 경각에 달렸는데...”

“고민하는 동안 시간이 갑니다. 어떻게든 움직여야 합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권율 장군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서 가서 모셔와라.”

정충신이 재빨리 움직여 길삼봉의 군막으로 갔다.

“성님, 군선이든 나룻배든 고깃배든 두세 척 내주시오. 시방 급합니다.”

그는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할 겨를이 없었다. 마침 탐망선이 적정을 살피고 나루로 들어오고 있었다. 세작들을 태운 탐망선이 강기슭에 닿자 우두머리 군교가 배에서 훌쩍 뛰어내려 군막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더니 길삼봉에게 보고했다.

“대장, 적선은 다섯 척이오. 연락선 정도로 쓰일 뿐, 군사들 모두 육상전에 투입되어 빈 배로 있습니다.”

“고걸 모두 구멍을 내고 올 일이제. 다시 가얄랑개비여. 정충신 첨사의 휘하에는 물속을 십리를 꿰는 수병들이 있승개 야들을 태우고 가서 적선 밑창에 구녕을 내고 돌아와부러!”

탐망선이 먼저 떠나고, 나루에 정박한 군선과 나룻배 두 척에 수륙 양용 선사포 병사들이 승선했다.

“탐망선의 작업 진행을 살피면서 건너야 하니 김포나루나 이산포 나루쪽으로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판돌 부장이 말했다.

“탐망선이 왜선에 다가가고 있는 이상 별 일 없을 거여. 직선으로 가자고. 한시가 급해.”

선사포 출신들인지라 모두들 배를 잘 다루었다. 강을 건널 때까지 적선의 움직임은 없었다. 정충신은 한강의 샛강인 양천으로 들어갔다.

궁산성 진지에서는 변이중 소모어사가 막료들과 둘러앉아 도강을 의논하고 있었다.

“배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가 문제로다. 열 척은 있어야 화차를 모두 운반할 수 있을 틴디 말이다.”

이때 정충신이 변이중의 군막으로 뛰어들었다.

“소모어사 어른, 권율 순찰사의 명으로 저희가 배를 가지고 왔습니다. 저희 배에 화차를 실으십시오.”

“배가 왔다고?”

변이중의 막료들이 와, 하고 함성을 질렀다. 그들은 대부분 변이중의 가솔들이었다. 부인 함풍이씨가 가복들을 이끌고 직접 밥을 해먹이며 남편을 따라온 것이었다.

“배는 몇 척인가.” 변이중이 물었다.

“세 척입니다.”

“세 척이라면 우리 가솔들 태우는 데도 부족할 틴디? 화차를 싣고 가려면 군선 열 척은 있어야 한다마시. 우리가 고민을 공연시 했가니?”

“여기서도 적과 맞서야 하니 화차를 여기에 그대로 배치하고, 설계도면과 기술자들이 건너가서 현지에서 제작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쓸데없는 소리. 그렇게 화포차가 한지 붙이듯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세.”

그러면서 그가 가복들을 향해 명령했다.

“화차들을 모두 해체하라.”

가복들이 늘어서있는 화차 앞으로 가더니 화차를 부수기 시작했다. 해체된 그것들을 배에 싣고 나자 깜깜한 밤중이었다.

“출발하세. 분리한 것들을 덕양산에서 조립하는 것이 시간상 빠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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