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공존하는 삶
임택<광주광역시 동구청장>

얼마 안 있으면 곧 설이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설이지만 필자는 ‘설날’하면 근래보다는 행복하고 정겨웠던 소싯적 풍경이 선연히 떠오른다. 그때는 모든 면에서 지금보다 여유롭지 못했어도 따뜻한 인정과 아름다운 풍속이 살아있었던, 말 그대로 민족의 대 명절이었다.

설날이면 조상들에게 정성껏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나눠먹으며 웃어른들께 세배하는 것으로 새해 첫날을 맞이한다. 어른들은 공부 열심히 해라, 건강하게 자라라는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나눠주며 자손들의 안녕을 축원해준다. 필자는 살아오면서 이런 설날아침의 따뜻한 풍경이 개인적으로 큰 위안과 자극이 됐다. 어르신들의 따뜻한 관심과 보호 속에 우리가 잘 성장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가졌고 매사에 감사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는 무언의 가르침을 공동체의 까다로운 의식(儀式) 속에서 배웠다. 허허로운 객지생활을 시작하면서는 고향산천과 일가어르신들이 생각나 문득문득 옛 설날 풍경이 그리워지곤 한다.

동구의 캐치프레이즈를 ‘이웃이 있는 마을, 따뜻한 행복 동구’로 정한 것도 행복했던 그 시절 기억이 어느 정도 작용했는지 모른다. 도시생활을 하다 보니 시골살이와 크게 다른 점이 직선과 수직이라는 깨달음이었다. 도로, 지하철과 같은 교통시설은 물론이고 도시에서는 수도선, 가스선 등 모든 게 반듯반듯한 직선으로 연결돼 있었다. 아파트와 고층빌딩은 또 어떤가. 하늘을 가로막고 수직으로 곧추선 건축물들은 만남과 소통과는 애시당초 거리가 멀다. 우리는 속도와 효율을 추구하면서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깨닫게 해주는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곡선과 수평이 가진 미덕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경제성장시대가 막을 내리고 인구감소 등으로 앞으로 얼마간은 ‘수축사회’가 지속될 것이라고 한다. 끝없이 팽창하던 성장경제 시스템을 반성·성찰하고 생태계, 이웃과 공존하는 삶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다. 우리 동구는 이를 위해 참여와 연대, 공동체와 같은 가치를 되살려 크게 네 가지 방향에서 구정시책을 추진하고 있다.

첫째는 이웃과 골목이 있는 마을살이의 즐거움을 일구는 것이다. 주민과 가치를 공유하고 주민들의 열린 공간 역할을 하게 될 마을소통방·소통경로당 개소, 마을복지거점센터 건립 등은 이를 위한 결과물이다. 올 한해 시범운영을 거쳐 그 성과를 13개 동으로 점차 확산해나갈 계획이다.

둘째는 인문도시 조성이다. 동구는 ▲주민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한 도시 ▲산책하기 좋은 도시 ▲책 읽는 도시 ▲어르신이 존경받는 도시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도시 ▲서로의 다름을 포용하는 도시 ▲이웃 간 담장 없는 도시 등 인문도시 7대 선언을 전면에 내걸었다. 특히 독서토론 모임 지원, 주민독서대전 개최 등 책을 통해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인문도시 상을 세워나갈 계획이다.

셋째는 골목경제 살리기다. 도시를 인체에 비유하자면 골목경제는 실핏줄과 같다. 뼈와 살로 피와 양분을 보내는 것은 실핏줄이다. 도시에 활기가 돌려면 실핏줄 역할을 하는 골목경제가 되살아나야 한다. 동구는 올해부터 7대 상권의 지역별 특성과 문화자원을 살린 특성화사업을 추진한다. 더불어 청년창업허브 조성사업 일환으로 청년스타트업 지원과 청년기업 육성에 힘써 매진할 것이다.

마지막은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환경을 위한 사람중심 도시재생이다. 지난달 말 개관한 푸른마을공동체센터를 시작으로 올해 궁동예술두레마당, 충장미디어산업센터 등 도시재생선도지역 3대 거점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3대 거점을 중심으로 주민 행복지수를 높여나가는 도시재생에 힘쓰는 한편 동명동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통해 광주의 원형을 간직한 문화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웃이 있는 마을’은 동구가 지향하는 꿈이다. 사전적 의미의 ‘꿈’은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거나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라는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를 결정짓는 것은 오로지 지역민과 공직자들의 몫이다. 주민들 가슴에 이웃의 따뜻한 정과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아름다운 공동체 정신이 자리 잡는 동구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설날 전야의 각오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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